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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면 감천, 초분
지성이면 감천, 초분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11.10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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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면 초도를 위시해서 우리 지역 곳곳에 '가장골'이 있다. 이런 지명을 가진 곳은 예외 없이 초분을 했던 곳이다.

옛날,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순천 하사리 예촌 마을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집이 너무도 가난했고 흉년까지 들어 남의 집 머슴살이조차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서 여수 삼일포로 이사를 와 어느 부잣집에서 고용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를 아주 극진히 모셨다. 자신은 다 헤진 옷을 입으면서도 어머니만큼은 옷을 갖추어 장만해드렸고, 음식도 항상 남겨서 어머니에게 공양했다.

어느 날, 그렇게 극진하게 모셨던 어머니가 그만 운명하고 말았다. 선산도 없고 묘지를 살 돈도 없었던 터라 임시로 인적이 드문 곳에다 시신을 안치하고 풀로 그냥 덮어놓았다.

이태가 지난 어느 날 저녁 무렵,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나무들이 소리를 내며 울기를 그치지 않은 것이었다.

어머니 시신이 어찌 되지 않을까 걱정만 하던 최씨는 잠시 비몽사몽이었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그의 어머니 장지를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바로 그 자리가 명당이니 거기에 쓰도록 하라고 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깨어보니 아침이었다. 비바람도 멎었다.

최씨는 노인이 일러준 대로 바로 거기다가 어머니를 모셨다. 그후부터 아내와 자식도 얻었고 집안이 일어섰다고 한다. 이 때부터 초분이 유행했다고 한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강남악부'에 배경 설화 그대로 전한다.

초분을 노래하며
바람이 어찌 그리 몰아치는가?
초분이 날아갈까 근심뿐이네.
비는 또 어찌 세차게 내리는지,
초분이 떠내려갈까 홀로 서러워했네.
초분을 부여잡고 밤을 샜더니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현몽하셨네.
비바람이 그친 후 그대로 안장했더니
하늘도 감읍하고 자손도 일어섰다네,

원래, 초분은 중국 양자강 동정호 부근에서 유행했다고 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에 대한 최초의 문헌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동옥저조'에 보인다. '증보문헌비고'의 '예고조'에도 나와 있다.

이를 보면, 초분은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섬이나 바다 주변에서는 보통 초분을 했던 것 같다. 그 형태도 돌로 쌓아서 그 위에다 안치하고 용마름을 하는 축대장도 있고 나무를 밑에 받치는 목괘장, 그냥 맨바닥에다 하는 평지장 등 다양하다.

당초에는 호상일 때 예외 없이 했고, 또 발복 기원과 지극한 효행의 뜻으로 가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횡사나 객사, 익사, 형사, 병사, 악상 등 주로 좋지 않은 경우에 했다. 좋지 않게 죽으면 영혼이 승천하지 못하고 원귀가 되어 가족에게 해를 입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끔은 이런 장례를 볼 수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든 조상을 각별하게 모셔야 한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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