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즐거움을 아는가
노동의 즐거움을 아는가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10.2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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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정정수 <발행인>
10월22일로 올 수출 총액이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흐뭇한 소식이 눈과 귀를 자극했다. IMF이후 계속된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시기의 기록이라서 그만큼 남다르게 느껴진다.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고 자랑하고 싶다. 이토록 가슴 뿌듯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에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수출에 신경쓰며 살아온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43년전인 1961년 수출액이 기껏 2,000만 달러 수준이었으니 그때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당시 수출품은 고작 중석(重石)과 농수산물 수출뿐이었다.

그때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무역선 하나 없었다. 굳이 수출선을 든다면 7800톤짜리 상선이었다. 그것도 미국이 쓰다가 폐선해야 할 정도가 되어 넘겨준 남해호란 이름의 낡은 배였다. 이 상선은 한달에 한번정도 미국을 오고갔다.

보름만에? 미국에 도착하여 화물을 넘겨주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거의 빈 배였다. 미국서 한국으로 보낼 상품도 없었지만 있다고 해도 그 배에 운송부탁을 할만한 회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5·16 군사혁명을 주도하였던 군인들이 수출 주도 경제를 국가 전략으로 채택한 것도 그 때다. 국가 경영의 최고 목표를 수출에 두고 매월 한 차례씩 대통령이 주재하는 수출 진흥 회의를 열어 수출을 독려하였다.

그런 강공정책의 결과 1964년에 처음으로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하였다.‘수출 1억 달러’를 이룬 11월30일을 수출의 날로 정하여 지금도 무역의 날 행사를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1964년에 1억달러였던 수출실적은 1971년에 10억, 1977년에 100억으로 폭발적인 증가를 했고 1995년 1천억 돌파 9년만에 2천억달러 시대를 연 것이다.

1억달러 수출 40년 만인 금년에 2천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그 기록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연 평균 수출 증가율이 21%를 넘어선 이런 업적을 일컬어 외국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세대들에게 연세대교수를 지낸 이기택 교수는 ‘위대한 세대(Great Generation)’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요즘 들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산업화의 중심 세력을 소위 보수·수구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때도 간혹 있지만 그런 비판에 신경 쓸 시간이 있겠는가. 누가 뭐라 해도 산업근대화를 이끈 세대는 보수·수구가 아닌 ‘위대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밤에도 낮처럼 일했고 몇일 야근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했다.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이면 시내중심가 극장까지 진출했고 막걸리 한잔에 ‘황성옛터’를 불러대며 젊음을 불태우곤 했다.

그 결과 자녀들에게 좋은 대학을 다니게 하였고 이제 ‘세계속의 한국인’으로 성장한 것 아닌가. 비록 박봉이었지만 숭고한 노동의 대가는 ‘한강의 경제기적’을 낳은 것이다.?

요즘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이스라엘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 구리온의 숨은 노력이 깔려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온 시오니스트 개척자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재건을 위해, 유대인의 자유 실현을 위해 노동으로 그 기초를 삼았다. 그는 1946년 이스라엘 건국을 앞두고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우리는 육체노동을 신이 내린 저주라든가 필요악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또한 육체노동은 생활 유지를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 육체노동은 인간의 숭고한 기능이며, 인간 생활의 기초이며, 인간 생활 가운데 가장 숭고한 것이다. 그것은 자유롭고 창조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긍지로 여겨야 할 것이 육체노동이다.”

벤 구리온은 수상직을 사임한 그날 곧바로 네게브 사막으로 들어가 집단 농장인 키부츠를 개척하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아론 고든 역시 벤 구리온 수상과 같은 생각을 하여 다음과 같이 외쳤다.

“스스로 노동을 하라. 그래야 비로소 우리 유대는 문화를 열고 자신의 생활을 얻을 수 있다.”

이같이 지도자들이 노동을 중요시하고 몸소 노동의 삶을 실천할 때 국민정신과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말없는 선구자들의 노력이 그 후손들에게 영광을 안겨주는 것처럼 노력을 한 사람이 없으면 그 후손이 누릴 수 있는 영광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편안한 자리를 있게 한 사람들을 수구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결코 예의가 아니다.

요즘은 ‘주5일 근무시대’가 일반화되었다. 말없이 땀 흘린 노동자들의 노력이 피워올린 꽃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생각 못한 일이다. 열심이 일을 하면서 동시에 가족이나 동료들과 함께 연휴의 주말을 즐길 수 있다.

친한 사람들과 함께 산으로 들로 나간다. 모든 것이 보기에도 즐겁다. 노동조합끼리 연합하여 ‘근로자 한마음잔캄를 열기도 한다.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그러나 아직도 노사의 대결은 해마다 보이지 않는 진통을 거듭하고 있어 안타깝다.

나이 든 세대가 무작정 노동을 하던 세대였다면 지금은 생각하며 일하는 세대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이 든 세대들이 ‘위대한 세대’들이라면 지금의 세대들은 다음에 무슨 세대라 불릴 것인지 궁금하다.

모르긴 해도 ‘노사갈등을 해결한 문화적인 세대’라 부르지 않을까. 수출 2천억달러 시대를 사는 젊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기대를 걸어보는 것도 남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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