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길의 땅 이야기] 화양면
[박종길의 땅 이야기] 화양면
  • 박태환 기자
  • 승인 2004.10.28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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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이란 땅이름은 이 지역이 말을 기르던 목장
화양면(華陽面)은 조선시대초기에는 남해안 방어의 중요한 역할을 하던 돌산만호진이 지금의 고내 마을에 있었고, 국가가 관리하며 말을 기르던 백야곶목장(또는 곡화목장)이 화동리 마을에 설치되어 있었다.

당시 행정소속은 순천부에 속해있던 조라포면의 상도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지금의 이름은 1897년 여수군(麗水郡)이 신설되면서 처음 갖게 되었다.

화양(華陽)이란 땅이름은 이 지역이 말을 기르던 목장(牧場)이었던 역사적 사실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는데, 본래 뜻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의 하나인 서경(書經)이란 책에 나오는 주나라의 이야기 주서(朱書)에서 인용(引用)된 고사(古事)이다..

주서(朱書) 무성편(武成篇)을 보면 주(朱)나라를 세운 주무왕(朱武王)은 상(商)나라를 정벌하고 전쟁의 참상을 겪은 뒤에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은 화산(華山)의 남쪽에 풀어놓고 소는 도림(桃林)의 숲에 풀어놓았다는 고사가 있다.

이 중 귀마우(歸馬于) 화산지양(華山之陽)이라는 구절(句節)에서 화양이라는 뜻을 인용하게 되었고 곡화목장을 관리하던 감목관이 거주하던 돌고개 마을의 뒷산 이름도 화산이었던 것이 고지도에서 확인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화양의 이름은 화양면 외에도 같은 뜻으로 사용된 곳이 있는데 뚝섬으로 많이 알려진 서울의 화양동(華陽洞)이다.

이 곳에는 조선시대(朝鮮時代) 사복시(司僕侍)라는 관청이 관리하며 국가의 말을 키우던 살곶이 목장이 있었다. 목장주변으로 한강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의 초지에는 많은 말들이 뛰놀고 울창한 수목의 숲에는 작은 산짐승들이 많아 왕자를 비롯한 왕족들이 자주 찾아와 사냥을 즐겼었다.

더군다나 궁중과 가까운 이곳에 출입이 많아지자 세종(世宗) 때는 그곳에 정자(亭子)를 짓게 되었고 정자의 현판(懸板)을 낙천(樂天)으로 하였다가 후에 화양정(華陽亭)으로 고치게 되었는데 이러한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에 전해온다.

이처럼 화양면의 이름은 평화(平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연유된 성군(聖君)들의 고사가 함께 전해오는 깊은 의미를 지닌 아름다운 땅이름으로 대부분의 고을의 이름이 전해지는 옛 지명(地名)을 한자(漢字)말로 바꿔서 만들어 졌으나, 화양(華陽)의 이름은 비교적 근대(近代)에 행정구역(行政區域)의 개편(改編)으로 만들어지면서 지역(地域)의 특성(特性)에 걸 맞는 고사(古事)를 찾아서 지어진 이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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