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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자연과의 대화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자연과의 대화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10.08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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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난중일기] 신병은 <본지 논설위원, 시인>
   
바람소리 맑은 가을이다
이제 곧 나무와 풀들은 가진 것 하나 둘 벗어 던지고 씨앗을 떨어뜨리며 제 삶의 깊이와 폭을 넓혀 갈 것이다.

우리는 또 한 겹의 옷을 껴입으며 긴 겨울나기를 준비해야겠지만, 마음 안에 한 평 여백을 마련하고 외롭고 힘들 때마다 찾아가 무겁고 힘든 삶의 보따리를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뒤돌아보면 올 한해도 늘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상 속에서 스스로 삶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느림과 비움’이라 했던가.

이제 한 걸음만큼의 보폭을 줄여 조금은 느리게 가면서, 나무와 풀처럼 제 안을 비우고 강물처럼 흘러가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자연과의 만남은 조여왔던 삶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 수 있는 길이다.

풀의 몸짓을 만나고, 나무의 이야기를 듣고, 물소리 바람소리를 만나다보면 거기에서 나의 안쪽과 바깥을 함께 만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세상을 만나게 된다.

세상은 즐겁게 살아야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세상은 즐거운 세상이다.
소크라테스와 장자 노자를 인용하지 않더래도 자연과의 만남은 자연을 읽을 줄 아는 일이다.

그것은 하늘의, 바람의, 나무의, 풀의 말을 알아듣는 일이다.
나는 요즘도 그렇지만 직장에서든 아파트에서든 내 생활공간이면 늘 내 나무를 정해놓고 틈만 나면 그 나무 아래 가서 책을 읽고 쉬기도 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다.

어떻게 나무와 대화를 나누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나무와 이야기를 하면 된다.
친하다 보면 나무든 풀이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것이 자연과의 만남이고 대화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통하지 않기 때문에 대화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낯설기 때문에 대화가 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오히려 안 통하는 세상을 살면서 나무와 풀과 대화하고 통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다.
이러한 대화가 바로 사색이 되고 시가 된다.

그래서 내가 쓴 시는 한결같이 자연과의 대화일 뿐이다.
자연과의 대화는 나 자신을 읽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서 조금 더 잘하기 위해서는 나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진보적 상상은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 나의 현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넓게는 역사 읽기다.

자신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절망하고 자만하다 실패하기 마련이다.
자신을 읽는 것은 자신의 현재를 과거와 미래로 연결짓는 길이며, 더 잘 볼 수 있고, 많이 볼 수 있고, 더 잘 들을 수 있는 길이다.

소리에서 빛을 볼 수 있고, 표정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캄캄한 밤에도 영롱한 빛을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앞당겨 볼 수 있다.

온통 어수선한 가운데 답답하리만큼 막혀버린 현대를 살아가면서 한적한 가을 길목에서 나누는 자연과의 대화야말로 내 작은 일상의 삶 속에서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고, 스스로 삶을 기획하고 편집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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