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모양의 함박개가 대곡(大谷)
소라 섬달천의 옛 이름은 달래섬
함박모양의 함박개가 대곡(大谷)
소라 섬달천의 옛 이름은 달래섬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09.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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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길의 땅이야기
소라면 서북쪽의 복산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법정리로 처음 만들어진 이름으로 조산, 풍류, 대곡, 마산, 신흥, 달천, 섬달천 마을로 이루어져있다.

조산마을은 본래 ‘고막개’라고 부르던 마을로 이 마을 아래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시절에는 고막이 많이 잡혀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여수반도에서 <고막개>와 비슷한 땅이름으로 불려지는 해산마을이나 화양면 등에서도 고막이 많이 잡혔던 지역의 이름들이 <꼬막등>과 같은 이름으로 전해져온다.

소라면지에서는 일제시대에 조산(造山)으로 이름 지어졌다고 기록하였는데 1789년의 호구총수에서 이미 조산마을의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산 마을의 이름은 한자의 뜻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산을 뜻하고 있어 마을에 전해오는 <똥섬>의 전설에서 재미있는 유추를 해 볼 단서가 있다.

풍류마을 앞 들판에 자리한 섬 모양의 작은 동산 <똥섬>은 그 곳에 자리하지 않았다면 전망도 확 트이고 들판도 넓어질 애물단지로 그 이름처럼 주민들의 이야깃거리에선 항상 천대 받았던가 보다.

옛날 어느 시대엔가 세상을 삼킬만한 대 홍수가 있었는데 어디선가 이 산이 등등 떠내려 오고 있는데 깜짝 놀란 마을 사람들이 저 산 보라고 외치자 지금의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고 한다. 조산과 풍류는 처음엔 한 마을로 조산을 <윗조산>이라고 하고 풍류를 <아랫조산>이라 하였으니 인공산 모양인 이 산을 조산이라 부르기에 적당하지 않았을까?

참고로 조산(造山)의 땅이름을 살펴보면 실제로 거대 고분과 같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곳도 많아 필자도 조산 마을의 이 섬이 ‘인공 섬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살펴보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보였다.

조산 서쪽의 풍류마을도 호구총수에 등장하는 마을 이름이다. 마을 입향조가 학문을 즐기는 선비라서 풍류를 즐긴다는 의미로 지어졌다는 유래가 전해져 온다.

여자만 바닷가에 위치한 대곡마을은 마을의 모양이 큰 함지박 모양으로 생겨서 ‘함박개’라고 하던 이름을 ‘함박포(含朴浦)’ 라는 한자이름으로 사용하다 여수군 신설이후에 ‘대곡(大谷)’ 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마을 앞들은 일제시대인 1913년 4월에 고뢰농장에서 여수지방 최초의 대규모 간척공사를 통하여 조성되었다.
마산마을은 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담이 막힌 마을 이란 의미의 <마근담>이라고 하던 것을 여수군 신설 이후에 마산이란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마을 주민 대다수가 오씨성인 집성촌이며 마을 뒤 문중묘지 부근으로 고인돌이 질서정연하게 열을 이루고 있다.

한 동안 이 고인돌은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왔다. 여수의 중심에 있던 석창성은 도술이 뛰어난 도사가 쌓았는데 여수지역의 큰 돌들을 불러들이다 공사가 마무리 되면서 돌들이 오는 것을 멈추게 하였다.

그 때 이 마을 뒷산에서 석창성으로 가던 돌들이 멈추어 섰던 것이 지금의 모양으로 굳어지게 되었단다.

달천마을은 마을 지형이 달을 닮아서 지어졌다고 하나 본래 부르던 우리말 땅이름이 정확하지가 않아서 그 유래를 추측하기가 어려운 마을 이름이다.

한 가지 생각해 볼만한 기록으로 달천 앞에 있는 섬달천에 관한 기록으로 송강 정철의 중형인 청사 정소 선생이 이곳에 머무르며 마늘을 심고 오징어를 잡으며 세월을 보낸 기록과 일화가 지봉유설로 유명한 이수광 선생이 기록한 <승평지>나 순천지역의 전해오는 시를 모아 편찬한 <강남악부>에 종산포(種蒜圃=마늘을 심은 밭)가 라는 한시로 전해온다.

이 기록들에서는 섬달천을 달래도(達來島)로 기록하고? 있는데 종산포의 산(蒜)이란 한자는 달래를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 일대에 달래가 많이 자라기도 하여 <달래섬>이나 <달래마을>로 불려지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신흥 마을은 풍류나 조산과 연결되던 길이 밀물이 되면 바닷물이 들어오자 바다에 돌다리를 놓아서 <석개>라고 하였는데 신흥이란 이름은 새터에 자리를 잡아 마을이 흥성하게 되자 불려진 이름으로 여수군 신설 이후에 생겨나 사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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