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땅이름 이야기] <16> 소라면 덕양리편
[여수 땅이름 이야기] <16> 소라면 덕양리편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09.07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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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의 이름이 있는데도 행정편의식 마을 이름불러
가는골·룡새미·성재마을 등 옛이름 찾기나서야
소라면은 고려시대 조라부곡에서 조선 초기에 순천부의 조라포면으로 바뀌었다가 1897년 여수군이 신설되면서 잠시 덕안면과 구산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오늘날의 소라면의 형태가 되었다.

이때부터 덕양리는 소라면의 중심마을로 발전하면서 덕양1구에서 6구까지 여섯 개의 행정리로 나뉘었는데 각 마을마다 고유의 이름이 있는데도 행정 편의적으로 1, 2, 3......6구하는 식으로 불려지고 있어 이제는 본래의 마을 이름으로 불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덕양1구로 불리는 상세동 마을은 하세동과 더불어 바다로 이어지는 가늘고 긴 골짜기가 있어서 '가는 골' 이라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 적어서 '세동'이라 하였다.?

1921년 소라공립보통학교와 1925년의 대포 간척지 등이 조성되면서 지금과 같은 마을의 형태를 이루었으며 최근 발간된 소라면지를 살펴보면 1933년 4월에 소라면사무소가 ‘관기’에서 ‘세동’으로 옮겨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로부터 <세동> 마을은 ‘금계포란지형’이라 하여 암탉이 알을 품은 지세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전설은 마을 북쪽으로 솟은 맷돌산의 한자 이름인 마석산(磨石山)에 맷돌바위가 있어 맷돌에서 빻은 곡식을 산 아래의 주민들이 먹고사는 형국이라 풍족하게 먹고 살 지세라는 이야기다.

특히 그 병아리 터에 학교까지 들어서게 되어 많은 인재를 배출하게 되었다며 맷돌바위 전설을 주민들은 좋아한다. <세동> 마을에는 재앙을 물리친다는 돌탑이 전해오다 없어졌으나 최근 다시 복원하였으며 마을 주변에 전해오는 땅이름으로 장으로 가는 길을 뜻하는 ‘장개재’를 비롯하여 시루떡바구, 안뚜루미, 바깥뚜루미, 아홉등, 도톳골몬당 등의 재미있는 이름들이 있다.

소라면사무소와 여양중고등학교가 있는 삼거리는 여수시와 화양면 방향으로 통하는 세거리의 갈림길이 있어서 삼거리라고 부르던 이름이 지금은 마을? 이름이 되었다.

이 마을은 70년대 까지만 하여도 많은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1981년 남해화학이 있던 낙포마을 이주민70여 호가 들어오고 면사무소의 이전과 학교의 영향으로 지금은 150여 호가 되어 덕양에서 가장 큰 마을이 되었다.

산자락 끝이 봉황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봉꼬리’라는 이름과 말머리 모양을 닮은 ‘말머리’와 물이 많은 들의 이름인 ‘구렁더리’의 이름이 전해지고 있으며 통천으로 넘던 고개의 이름이 ‘돌고개’인데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라서 이름 지어졌다고 하나 몇 기의 고인돌이 남아있어 돌이 있던 고개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덕양4구 마을에는 <통천(桶泉)>, <성재(星才)>, <가장(佳長)> 이란 이름의 작은 마을이 있는데 통천은 본래 <통새미>라고 부르던 곳으로 마을에 있는 공동 우물의 주변을 통나무로 우물 벽을 만들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마을 이름이다.

성재마을은 정확한 유래는 알 수가 없으나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마을에 공자님을 모시던 ‘모성제’라는 사당에서 유래되어 뛰어난 인재가 많이 배출되라는 뜻으로? 성재(聖才)로 표기하다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전해온다.?

가장마을은 한자로는 아름다울 가(佳) 와 긴 장(長) 으로 표기하여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이지만 어떤 지역의 가장자리나 가장골이 있었던 곳에 많이 붙여지는 마을 이름이다.

덕양의 다섯 번째 마을인 5구에는 내기(內基), 흑산(黑山), 가산(佳山), 덕곡(德谷) 마을이 있다. 내기 마을은 조선시대 통신 교통제도로 운용되었던 역원이 있던 마을로 덕양이라는 이름은 내기 마을에 있던 역참의 이름이었다. 덕양역은 성생원, 무상원등과 함께 우리 여수지방에 있던 역참으로 조선후기의 기록에는 전라도의 오수도찰방에 소속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내기(內基)란 마을 이름은 이 역이 있던 안골이란 지명을 한자로 바꾼 이름이다. 내기 마을 건너편의 흑산(黑山) 마을은 우리말 이름인 <검뫼>를 한자로 고쳐서 흑산이 되었다. 산에 나무가 우거져 산이 검게 보여서 <검뫼>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가산 마을은 내기마을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아름다울 가(佳)와 뫼 산(山)자로 표기되어 있어 마을의 전경이 아름다워서 이름 지어졌다는 이야기만 전해져 온다.

덕곡(德谷) 마을은 마을이 들어서기 전 역이 있는 고개란 뜻으로 역고개라고 부르던 곳에 하나 둘씩 마을이 들어서자 음이 비슷한 덕곡으로 이름 짓게 되었다.

내기 마을을 중심으로 한 덕양의 5구 마을 주변에는 일제 시대 금을 채굴하던 금광이 여러 곳에 남아있으며 돌부처가 있던 ‘독부처골’ 소의 구시같이 홈이 파인 ‘구시밭골’ ‘두엄산’ ‘주름산’ 등의 땅이름이 전해온다.

덕양6구 마을인 중승골은 하세동의 일부로 속해 있었으나 엘지정유 공장부지의 이주민과? 최근의 아파트의 건축으로 주민이 늘어나자 1997년에야 행정리가 된 소라면의 막내 마을이다.

이곳에는 임진왜란당시 충무공이 옷을 갈아입었다는 전설의 ‘역의암(易衣岩)’과 신성포에 있던 왜장을 피하여 절개를 지키려고 목숨을 버렸다는 ‘여기암(女妓岩)’ 의 전설이 전해져 오는 바위가 전해져 오며 역의암이라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전해와 옛사람들은 이 지역을? 글씽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던 곳이다.

주민들은 마을의 유래를 이곳에 중승암이라는 절이 있어서라 전하는데 ‘중승’이라는 말에서 스님을 연상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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