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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긍정적인 시민운동을 위한 제언
[시론] 긍정적인 시민운동을 위한 제언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09.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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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기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 시민의 소리 논설위원>
얼마전 전남도청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을 만난 적이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필자는 ‘속된 말로 어떤 집단이 요즈음 가장 잘 나가는가?’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러자 그 공무원 말이 DJ 시절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가장 잘 나가는 집단은 시민단체 출신이라고 답을 하였다.

그에 따르면 시민단체 출신들과 참여정부는 서로 코드가 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시민단체 대표들이 실질적으로 관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며, 각급 행정기관에서도 자기 분야의 시민단체를 사실상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한 경력을 갖고 관료사회의 주요 직책에 진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의견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 말을 하는 공무원의 태도에서도 약간의 비아냥을 느꼈다면, 필자의 선입견 때문일까?

하지만 필자는 자칫 경직될 수 있는 관료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전문성이 행정행위의 전문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일단 바람직한 현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사망했을 때 외무부가 보여준 어이없는 행태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외무고시로 대변되는 외무부 충원구조의 경직성에서 한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민단체가 갖는 여러 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모습이 반드시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관료도 아니고, 시민단체 구성원도 아니지만, 사회운동을 전공으로 하는 필자는 비교적 시민단체의 활동과 관련된 비판들을 자주 접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시민단체에 대한 비판은 놀랍게도 시민단체가 비민주적이며 권위적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비판은 시민단체 구성원이 너무 많은 부문에 개입하고 있어서 그의 전문성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이 근거없는 것일까?

필자는 시민단체에 대한 일반인들의 비판이 근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민단체가 비민주적인 조직으로, 심지어 권위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아직도 권위주의시대의 운동논리에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부정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기에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현재 시민단체의 주된 구성원이고, 따라서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상대를 부정하는 운동행태가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이다.

부정의 논리를 대표하는 것이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다. 여기서의 자기 의식은 다른 의식들과 대립함으로써만 확립된다.

즉 주인은 노예가 있어야만 성립하는 개념이며, 노예 역시 주인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나아가 노예는 주인을 부정해야만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논리는 역사적으로 피지배자의 해방논리로 사용되어 왔다. 반면 니체가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논리는 대조적이다.

니체는 노예는 주인을 부정해야만 자유인이 될 수 있지만, 주인은 그 자체로 자유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노예가 부정의 논리에 의해서만 자유로운 반면 주인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재권력이 사라지고 난 오늘날, 시민운동의 코드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운동이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민주, 인권, 평화 등의 가치가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이는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새로운 삶의 조건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전문성의 부족은 시민단체의 열악한 조건에 기인하는 것으로, 앞으로 여러 가지 수준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특히 한 사람이 많은 부문을 감당하는 구조는 시급히 바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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