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발 신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
“내 신발 신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
  • 정송호 기자
  • 승인 2004.08.30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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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살 때 여수 와 40년 넘게 맞춤구두 제작
디자인이나 외향보다 발보호하는 편안함 으뜸
“기성화는 6개월만 신으면 틀이 깨져 얼마 못 신는데, 돈을 좀 더 주더라도 맞춰 신으면 1년이 지나도 끄덕없다”

진남관 위쪽 종고산 사우나 아래 도로변에 위치한 양화점 ‘아담제화’에서 만난 50대 아주머니는 “왜 구두를 맞춰 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이 아주머니는 1년에 서너 켤레를 맞춰 신는다는 말까지 곁들였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여수에는 100여 곳이 넘는 양화점이 있었지만 양복과 함께 사양사업으로 접어든 양화점은 이제 박홍무(62)씨가 운영하는 ‘아담제화’와 ‘두발로’ 단 두 곳만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이다. 그는 여수에 처음 왔을때 양화점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경남 사천출신인 그는 스무 살을 갓 넘겨 여수의 ‘새로미 양화젼에 취업하면서 ‘맞춤구두’ 기술자의 삶을 살아왔다.

‘꼽추’라는 신체적인 약점에도 40년이 넘게 구두와 더불어 살아가는 박씨의 인생은 기구하다. 태어난지 5개월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셔 큰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생활해야만 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 6.25전쟁이 발발, 마을까지 인민군이 습격했을 당시 소위 ‘빨갱이’를 ‘빨간돼지’라 부르던 마을 어른들이 “빨간돼지 잡으러 간다”며 산 속으로 뛰쳐 가던 길을 구경삼아 따라 나서다가 그는 총소리에 놀라 그만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변을 당하고 말았다.

큰 집살이를 하던 그는 집에서 쫓겨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어른들에게 말도 못하고 한 달동안 병원도 가지 않은 채 끙끙 앓다가 그만 ‘꼽추’가 되고 만 것이다. 지금도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일은 그에게 큰 고통이다. 그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라 보였다.

화정면 출신인 그의 아내 김미란(52)씨도 1급 청각장애인이다. 살면서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결혼을 했다는 그에게는 이제 건장한 두 아들이 있어 든든하다.

“손님들을 속이지 않고 편하게 만들려고 항상 애쓴다”는 그의 구두에 대한 철학은 첫째도‘편안함', 둘째도 '편안함'이다. 그는 “요즘분들은 신발의 디자인같은 외향에 신경을 쓰지만 신발은 무엇보다도 발을 보호할 수 있는 편안함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성화는 ‘군화에 발을 맞추는 격’이라는 것.

양화점이 성업을 이룰때만 해도 하루 10켤레 이상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특이한 발을 가졌거나, 사고가 나 양발 모양이 다른 특수한 고객이 맞춤구두를 찾는다고 한다. 맞춤구두는 손님 발의 치수를 일일이 재는 일부터 시작해 보통 구두 한 켤레당 1주일이 걸릴 정도로 손이 많이 간다.

12가지가 넘는 화공약품을 사용하는 탓에 장시간 일을 하다보면 환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는 그는 이제 나이 탓에 힘이 달려 주문받은 양을 소화해 내기가 벅차다. 불경기에도 입소문을 듣고 꾸준히 이 곳을 찾는 이들은 한 달에 20-30명. 10년 넘게 맞춤구두만 신는 단골고객도 있다.

1시간 이상 앉아 일하기 힘들었지만 돈 벌 욕심으로 참고 해 왔다는 그는 자신이 만든 구두에 대해 “건방지지만 내 신발을 신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고 감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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