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난중일기]“KBS의 주인임을 포기하며”
[신난중일기]“KBS의 주인임을 포기하며”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08.2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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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시청자가 주인인 KBS! 그래서 여수시민이 주인인 KBS여수방송국! 그러나 나는 여수시민으로서 KBS 주인임을 포기한다.

어처구니없는 여수방송국 철폐에 맞서 그 동안 많은 시민들과 함께 가슴을 쥐어뜯는 심정으로 반대해왔고 차분히 설득도 하고, 엄중히 경고도 하였다. 하지만 중앙패권주의에 찌들어 지역 따위는 깡그리 무시하는 저 무지막지한 언론권력자들은 끝내 여수방송국 문에 대못을 박고 말았다.

우리가 KBS여수방송국 폐쇄를 반대한 것은 단지 방송국 하나 없어지는 문제에 집착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공영방송의 역사에서 여수를 지우려고 예정한 9월1일은 여수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날이다.

임란 유적지 여수의 심장이 짓밟히는 날이다. 300여 한려수도 섬들에 소외의 칼날이 꽂히는 날이다. 그리고 이 날은 지방화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외면하고 방송민주화를 찬탈한 한국공영방송 KBS가 조종을 울리는 날이 될 것이다.

KBS의 주인은 시청자이다. 이것은 KBS가 내건 구호이기에 앞서 수신료를 내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당연하고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국민들의 절반은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살고 있다. 비대해져 휘청대는 수도권과 달리 지역은 영양실조에 걸려 휘청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KBS는 수도권의 방송기자재, 기자, 피디, 스튜디오, 기술, 편성권, 예산 등을 지역으로 분산 재배치해야한다.

그래서 인구분산, 정보배분의 민주화, 삶의 질의 균등발전을 도모해야하는 것이 공영방송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지역방송국을 죽여 중앙을 더 살찌울 궁리만 하고 있다. 더욱이 구조조정을 내세우면서 멀쩡한 여수방송국을 폐쇄하고 새롭게 순천방송국을 짓겠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혈세 낭비이자 국민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거창한 지방화시대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렇다. 여수는 21세기 신해양시대의 중심지이다. 육지자원의 고갈을 예견한 많은 선진국들이 해양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는 해양을 떼어놓고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지리적 환경에 놓여있다.

그런 점에서 추진되고 있는 2012년 세계해양박람회는 비단 여수지역뿐만 아니라 국가적 명운을 좌우할 중대사로 자리매김할 터이다.

또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섬들을 생각하면 여수는 전파의 개념상으로는 전남동부권의 중심지이다. 가뜩이나 소외지역에 떨어져 사는 섬 주민들에게 공영방송은 하나의 등대와 같다.

돈이 안 된다고 외면하는 것은 상업방송이나 취할 바이지 KBS가 그렇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공영방송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정책의 기조가 소외지역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을 때, 오히려 없던 방송도 만들어야할 곳이 바로 여수이다.

생각이 바로 박힌 KBS라면 지난 50년의 여수방송국 역사 동안 지역에 충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고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지역방송국을 만드는데 골몰해야 옳을 일이다.

KBS경영진은 이러한 여수의 현실과 객관적 진실마저 외면하고 도망치듯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더 이상 호소하고 기대할 것은 없어졌다. 우리가 내는 수신료로 우리를 몰살시키려는 KBS에 이제 더 이상 주인행세를 할 수 없게 된 여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인임을 포기하는 일 뿐이다.

그것은 수신료를 내지 않는 구체적인 행위로 얻을 수 있는 적극적인 포기이다. 그래서 수신료 거부운동을 하자는 여수시민들의 목소리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다.

앞뒤도 맞지 않고 궁색하기만한 구조조정 변명으로 여수를 떠나려 분주히 채비하는 KBS에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자고로 진실을 외면하고 거스르는 권력치고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지 않은 권력은 없었다.

지금은 당신들의 주인 됨을 포기하는 여수시민들이 역사 속에서 진정한 당신들의 주인이 되는 날, 오늘 찢어진 가슴의 고통이 그대들의 것이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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