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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찾기운동’을 벌이자
‘거북선찾기운동’을 벌이자
  • 남해안신문
  • 승인 2004.08.02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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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섭 <전라남도 정무부지사>
지난 4월께 지방일간지에 영산강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건조된 것으로 보이는 초대형 고대목선 조각(길이 5.8m)이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한 전문가는 배 길이가 30m가 되는 ‘고려시대의 초대형 전함’이라는 분석을 내 놓았다.

‘왕건이 덕진포로 나가자 견훤이 전함을 배열했는데 목포에서 덕진포까지 전함이 서로 종횡으로 잇대었다‘는 역사의 기록이 있고 보면 이 배가 양측의 전함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전함!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충무공 이순신의 ‘거북선’이 불현듯 떠올랐다. 무려 천년이 지난 목선도 고려시대의 역사를 안고 우리 앞에 그 신비를 드러냈는데 500여년전 조선시대의 철갑선인 거북선도 분명 되살아날 것만 같은 설렘이 일었다.

아시다시피 여수에는 ‘선소’가 있다. 당시 전라좌수영의 공식선소인데 여기서 거북선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에게 구국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세계해전사에 있어서도 전무후무한 분이다. 단지 12척의 배로 133척의 대함단을 상대하여 무려 31척을 격침시킨 명량대첩은 하나의 신화처럼 남아 있다.

당시 해군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충무공께서는 어떻게 제해권을 확보했을까? 물론 공의 전술전략이 뛰어난데다 애국애민의 정신을 통해 민관을 하나로 엮어 최대의 잠재력을 이끌어낸 지도자의 자질이 그 바탕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거북선의 구상·설계·제작에 대하여는 나대용 장군 등 여러 주장이 있다. 다만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여수임지에 부임할 때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꼭 l년 2개월 전이었고, 임진년 2월에 거북선에서 대포를 쏴보았다는 최초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순신께서 아군의 해군전투력을 높이기 위한 거북선 제작에 어떤 형태로든 관여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거북선의 제작에 대한 당시 기록이나 실물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거북선의 그림이 그려지고 모형이 제작되어 우리의 눈앞에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정조의 충무공에 대한 흠모의 정 때문이라고 한다. 1795년에 정조대왕은 ‘이충무공전서’를 간행토록 했고, 이때 거북선에 관한 기록도 소상히 실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거북선이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의 거북선과 100% 일치하지는 않을 터이지만.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장금’이라는 이름 한 줄로 ‘대장금’이라는 대하드라마가 탄생할 정도인 만큼 과거시대의 정보는 사소한 것이라도 그간 축적된 자료가 있기 때문에 현대정보사회에서는 복원이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그동안 호국축제로 여수진남제를 벌여온 여수시에서 올해 새롭게 ‘여수거북선축제’로 이름을 바꾸고 축제의 틀을 바꾸었다. 이와 때맞춰 ‘거북선 찾기 운동’을 남해안 일원에서 전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유사한 예지만 충북에서는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직지심경 찾기 운동’을 지난 97년부터 줄기차게 전개하고 있다. 우리도 전문가와 해군 및 해양연구소 등의 협조를 얻어 남해에 배를 띄우고 ‘거북선 찾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보자. 바다밑 어딘가에 한 두 척 있을 법한 거북선을 발굴, 선소에 전시할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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