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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장인 5] “치장과 과시 아닌 땀, 정성 묻어나야”
[여수의 장인 5] “치장과 과시 아닌 땀, 정성 묻어나야”
  • 정송호 기자
  • 승인 2004.07.31 1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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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 명장 손형민(54)씨

   
여수 봉산동 수협마트 길 건너편에 세화가구라는 허름한 작업실을 둔 나전칠기 장인 손형민(54)씨. 19살때부터 7남매 맏이로서 생계를 책임져야했기에 기술을 배워야했다. 여타의 장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먹고 자기위해 기술을 배운 것이다. 그가 선택한 것은 서정시장 다리가의 한 가구공장에서 자개농을 만드는 일.

‘남의 물건 손 안댈 사람 같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인 곳은 고인이 된 정영래씨가 경영한 ‘문화가구’(태양가구 전신)였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여수에는 수십 개의 가구 공장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 중에서도 동남가구, 남씨가구, 문화가구 등이 ‘빅3’로 불리며 가구업계를 대표했다.

여수사람이면 누구나 가구공장 마당에 놓인 누런 ‘아교덩어리’를 장작불에 녹이는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돈이 넘쳐났던 그 시절, 고가의 자개농을 장만하기 위해 주부들은 소위 ‘농계’를 하기도 했다.

연장을 만지기까지 10여 년 동안 심부름만 해야 했던 그가 연탄 한 장에 2원50십전 하던 당시, 받은 월급은 30원. 하지만 자신의 고향인 화양면 화동리에서 양식을 갖다 먹으면서 억척스럽게 기술을 배워 나갔다. 한때 삶의 무게 때문에 자살까지 기도했던 그는 지금도 그때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는 무섭고 엄했던 자신의 스승인 문화가구의 정영래 사장을 잊지 못한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조금이라도 잘못 만들면 다 부숴버리는 괴팍한 성격의 스승이 있었기에 나전칠기의 기술을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손씨는 “세상에 그렇게 엄한 스승이 있었을까 싶다. 뭘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다시“ 그랬으니까, 진짜 숨도 쉴 수 없었다.”

“단 한번도 칭찬을 하지 않았다”는 그의 스승이 자신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농을 만드는 기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의거리장’을 만드는 고참 기술자가 중간에 돌연 일을 그만 두게 되자 의거리장의 완성은 손씨의 몫이 되고 말았다.

밤잠을 설쳐가며 의거리장 두 짝을 완성하는 일에 매달린 그는 일주일 만에 보란 듯이 끝냈다. 손씨는 이때가 자신의 인생에서 ‘고비’였다고 말한다.
자개농 한 짝을 짜기 위해서는 나무를 건조시키는 ‘백골부’, 자개부, 칠부, 장식부 등 네 파트의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러나 손씨는 의거리장을 만들어냄으로써 전 공정을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칠만 하더라도 초칠, 중칠, 상칠 등 몇 겹으로 덧씌워야하는 나전칠기의 핵심은 나무를 건조하는 과정에서 습기를 완전히 제거하는 일이다. 집안 가구 중에 몇 년도 안돼 나무가 뜨거나 못자국의 녹이 베어 나오는 것은 모두 습기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손씨는 이런 가구를 ‘2년생’라고 말한다. 손씨가 칠의 원조라고 꼽는 사람은 여수 중앙동에 거주하는 남씨다. 조개를 붙이는 나전기술은 우리가 뛰어났지만 칠은 일본이 앞섰다고 말하는 손씨는 남씨가 일본 칠 기술인 ‘호마이카’를 여수에 처음 선보인 원조라고 강조했다.

공정이 복잡하고 수익성이 맞지 않아 종업원없이 혼자 작업을 하는 손씨는 365일 내내 일에 치어 쉬지를 못한다. 자식에게라도 기술을 전수해 주고 싶었지만 배우려고 하지 않아 명맥을 유지하는 일이 어렵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손씨. 이제는 손이 떨리고 점점눈이 어두워져 나전칠기를 만드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있다.

그는 처음 나전칠기를 배울때 자신이 사용했던 대패 2개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자신의 아들에게 이를 물려 줄 생각이다.?항상 ‘뒤탈이 없도록 만든다’는 자신의 철학으로 목수 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고집스럽게 나전칠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손씨는 ‘치장과 과시의 가구’가 아닌 ‘땀과 정성이 베인 가구’가 주는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다.

“진짜 장인은 지금 다 돌아가시고 지금은 어설픈 장인만 남았다”는 손씨의 독백이 귓전에 울렸다.

정송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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