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을 닮아 ‘학서리’에 비행장 건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목사 순교지
학을 닮아 ‘학서리’에 비행장 건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목사 순교지
  • 관리자
  • 승인 2004.07.1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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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리는 마을에 거북바위가 있어서 이를 한자로 <구암(龜岩)> 이라 하였고 여수군이 신설되면서 생긴 구산면이란 이름도 구암리에서 비롯되었다. 평지돔, 간지돔, 넘어돔의 작은 마을 세 곳이 있었지만 애양원이 들어서면서 평지돔은 들로 변하였다.
비행장 동쪽 마을인 학서리는 마을의 지형이 학 모양이고 학이 많이 살아서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지금은 학모양의 지형에 비행기가 오르내리니 풍수지리 상으로 볼 때 우연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마을이다.
마을에는 <구암별묘>라고 하는 서원이 있어서 고려 공민왕때의 문절공 차원부라는 분의 교지가 모셔져 있으며 <차문절공의 공유사목판> 이라는 유물이 전해온다.
옛 기록에는 <소룡단>이라는 마을 이름으로도 불렸던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마을 북쪽에 있는 <소랑등>이라는 땅이름을 한자로 옮기면서 웃을 笑에 용 龍으로 표기하여 웃는 용 모양이라는 뜻으로 변하였다. 소랑은 소라를 뜻하는 사투리 이다.
애양원 병원을 중심으로 한 신흥리와 애양리 도성리는 모두 애양병원의 역사와 함께 생겨난 마을이다.
애양원은 미국인 선교사 오웬 목사가 전도를 하던 중에 구걸을 하던 나환자를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어 윌슨 목사와 함께 1909년에 나환자 치료를 위해 현 광주시 봉선시장 부근에 나환자 치료소를 설치 운영하다가 환자가 600여명으로 늘어나자 1925년에 신풍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광주 봉선리에 있는 환우들이 이주하면서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포사이트, 윌슨, 토플로 이어지는 선교사 들의 노력으로 미국의 베드로 선교회의 원조를 받아서 베드로(미국명peter)의 한자 이름인 제1 피득(彼得)촌부터 5피득촌까지 집단촌이 만들어지고 다윗대학의 원조로 다윗촌이 만들어지는 등 규모가 커지면서 환자 가족들과 치료자들 병원 관계자들이 모여들어 주변 마을이 형성되었다.
신흥 마을은 주변을 모래가 많아 모래촌이라 부르던 곳에 애양원 관계자들의 공제조합에서 마을을 이루게 되자 <공제동>이라 하였다가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흥> 이라 하였고 도성리는 애양병원의 원장이며 선교사였던 토플 선교사의 한국이름인 도성래의 이름을 따서 <도성>이라 하였다.
애양리는 병원과 인접한 마을로 병원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애양원은 손양원 목사가 마지막 살았던 곳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피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걱정 끝내 목숨을 잃어 순교자로 추앙을 받고 있는 손양원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도성리의 앞에는 율촌의 유일한 섬마을인 송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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