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어민, 머리 맞대야
정부와 어민, 머리 맞대야
  • 박성태 기자
  • 승인 2004.06.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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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어로행위 대안은 없는가
“노점상과 고데구리배가 같다고 생각하세요”
“생존권 운운하는 말은 말이 안된다.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가자원을 씨를 말리는 고데구리배는 간접 살인행위에 가깝다”
여수해양수산청 한 관계자의 말이다. 어민들을 ‘간접 살인범’으로 확신하는 이 관계자는 ‘일망타진’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확고한 의지에 불구하고 지자체가 안일하게 대응한다는 것. 수산공무원들의 뇌 속에 ‘고데구리=악의 축’이라는 등식이 각인되어 있는 한 해결책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같은 단속기관과 고데구리배의 ‘쫓고 쫓기는 숙명적인 관계’의 해결책은 없을까. 10톤미만의 소형어선들이 어획 자원 싹쓸이 주범으로 내몰리면서 불법어로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단속만이 최선의 대안인지 그 속사정을 알아보았다.
어민측 입장“진짜 누가 싹쓸이인지 용역 한번 해보자”
지난 11일 고흥 외나로도 인근 해상에서 무궁화호 어업지도선과 소형기선저인망 어선이 충돌해 어선이 전복되는 사고로 여수어민회(이창규회장)가 술렁거렸다. 이들은 이 사고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낼 수 있는 호기로 활용하고자 기자회견을 갖는 등 집단적인 반발을 보였지만 강력한 공권력앞에 무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 날 이들은 누가 과연 바다 싹쓸이 주범인지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연안어업 실태조사단’을 구성해 전 업종별로 어획 강도와 자원남획 등 해양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공개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나아가 일본의 소형기선 저인망과 같이 Ⅰ적정한 어선세력 Ⅱ 일정한 조업구역 Ⅲ선박톤수, 기관마력 Ⅳ그물코 규정 Ⅴ년중금어기, 월중조업수 등을 엄격히 규정해 제도권내로 양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상머리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지말고 실제 바다 실태를 단 한번이라도 조사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간접 살인행위’를 일삼는 자들의 말을 들여 줄 리는 만무하다. 실태조사를 새롭게 할 꺼리도 안 된다며 철저히 묵살하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근절책’도 ‘바다 살리기’도 실효를 거두지 못해 악순환만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속칭 ‘고데구리배’는 연안복합(패류껍질업, 채낚기, 외줄낚시, 문어단지, 손꽁치 등)으로 허가를 합법적으로 받은 10톤미만의 소형어선들이 줄대신 그물을 이용해 다년산 새우,낙지 등을 조업하는 배들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물의 중심을 잡아주는 ‘정개판’으로 가로 2m, 세로 1m 정도의 합판 밑단에 철판을 깔아 놓은 것. 정개판은 바다 맨바닥(저질)에 서식하는 새우나 낙지 등을 잡아 올리기 위해 저질을 훑어 주면서 그물의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줄’을 이용한 조업을 해야만 하는 어선들이 그물을 이용해 바다 바닥을 훑어 내는 불법어업을 하고 있는 셈. 지난 2000년 5월경 창립된 여수어민회에는 이런 고데구리배가 300여 척이 가입해 있다.
이창규회장은 “어업허가 99%가 연안연승,연안복합 등으로 동일한 어법이고 한중,한일어업협정으로 근해바다가 없어져 모두 연안으로 들어와 작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며 “결국 연안에 어선은 많고 조업 구역은 좁아지고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이 불법어로를 하고 있다”고? 말해 어민들보다 정부 정책이 불법어로 행위로 내몰고 있다는 것.
여수시의 경우 지난해까지 어업허가를 받은 연안복합 어선은 모두 3485척으로 연안자망 786척, 연안통발 381척 등 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30년째 고데구리배를 탔다는 이모(56)씨는 “고데구리배 단속을 본격적으로 한 것이 한 10년전부터 인 것 같다”며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고기도 안 잡히고 앞으로 남고 뒤로까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푸념을 털어 놓았다.
결국 어민들의 불법어로행위의 원인은 ‘정부의 해양수산정책 실패에 따른 바다 환경 변화와 전통적인 생계’로 집약된다.
여수어민회 소속 어민들은 정부의 강도 높은 단속이 본격화되자 2000년부터 감척 주장과 함께 자정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5월 산란기와 10월 성수기에는 치어 보호 차원에서 조업을 금지하고 타 회원 조업까지 마고 있다. 따라서 정부도 단속보다는 유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8년째 고데구리배를 타고 있는 김모씨는 “치어를 안 잡는다면 거짓말이지만 문저리같은 것을 치어라고 볼 수 없지 않냐”며 치어 남획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불법으로만 매도하지 말고 용역조사를 한 번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와함께 단속의 형평성도 지적한다. 연안 어장 황페화가 전적으로 소형기선저인망에 있다는 정부의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
연근해 자원감소는 연안어업허가 남발과 어구 및 기관마력 미규제 등 제도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어민전국총연합회(정찬수 회장)에 따르면 연안 어선을 10톤이하로 제한하고 어선당 1000-1만2000개까지 설치하는 ‘통발’이나 30-110km까지 까는 ‘근해자망’, 30-50통까지 사용하는 ‘안강망’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단속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소형기선저인망이 합법화돼 있고 현재 전체 어선의 1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우리 나라만 유독 수많은 불법어업 가운데 왜 소형기선저인망만 문제를 삼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탓에 여수어민회 소속 회원들은 수산업법 위반으로 벌금 전과가 대부분 10범이상으로 최고 30범까지 있다. 정부가 실효성없는 정책으로 전과자만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어민들은 바닥을 긁지 않고 작은 고기 탈출 장치가 부착된 ‘중층 트롤’이라는 합법적인 어업을 요구하고 있다.
#그림1중앙#
정부측 입장“강력한 단속외에 다른 수 없어” 악순환
여수시는 지난 해 145건, 올해 상반기는 75건의 고데구리배를 적발했다.
이같은 수치는 여수어민회에 가입한 회원수가 300척임을 감안할 때 매년 절반이 넘는다.이밖에 해수부, 해경, 전남도의 단속 건수까지 합하면 여수 소형기선저인망 대부분 해년마다 한두차례 적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10년 이상 배를 탄 어민들은 전과 10범이상의 수산업법을 위반한 전과자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같은 단속에도 불법어로 행위는 근절되지 않는 현실에 있다.??
여수시 어업지도계는 어민들의 고데구리배 양성화 주장에 대해? “허가대로 해야한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산정책상 공유수면은 국가자원이고 국가가 관리해야 하므로 어족씨를 말리는 고데구리배는 ‘근절’외에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어업지도계 관계자는 “차라리 권총을 들고 은행을 털어라”고 말한다. 어민들이 요구하는 실태조사 또한 “이미 국립수산과학원 등에서 자체 조사를 했지만 실태조사를 해 볼 필요도 없이 어족을 싹쓸이를 하고 있는데 무슨 실태조사냐”는 입장이다.
정부는 어업의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 지난 94년부터 감척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지만 보상금이 어민들의 부채탕감에도 못 미처 감척 신청자는 2%대에 머물고 있다.
결국 대안없는 단속 강화는 어민들의 저항만 부추겨 악순환만 되풀이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20-30척의 고데구리배들이 선단을 이뤄 공권력에 맞서 싸우거나 45노트 이상의 고속엔진을 달아 지도선을 따돌리고 한번 잡은 고기를 절대 놓치지 않기 위해 그물이 세 겹으로 된 ‘삼중자망’을 사용하는 배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단속에 한계를 느낀 해양수산부가 2001년부터 자구책으로 내놓은 정책은 ‘자율관리형 어업제도’. 이 제도는 정부는 연안 어족자원 확충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투자에 들어가고 어민은 불법어업을 감시, 추방하는 등 어장 자율관리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어민이 어민을 감시하고 신고하는 이 제도가 조기에 정착할 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어민들간 분쟁만 키울 공산이 커 감척사업과 함께 겉돌고 있는 실정이다.
대책 "감척사업 현실보상, 중층트롤 합법화"
고데구리배를 타는 어민들 대부분 자신들의 어로행위가 불법임을 알지만 생계를 위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번 단속에 걸리면 고기와 어구,어장을 몽땅 뺏기고 수백만원의 벌금을 내지만 몇 십 년 걸쳐 마련한 배를 쉽게 포기하기는 어렵다. 어업허가권만 해도 4-5천만원에 이르고 10톤 미만 소형어선 한 척이 억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차라리 벌금내고 불법조업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소형기선저인망이 하루 조업을 나서면 면세유 3드럼(1드럼 200리터, 드럼당 75000원), 얼음, 상자, 음식 등 30-40만원의 경비가 소요되는 반면 수입은 잘 될 경우 하루 40-50만원 정도로 ‘앞으로 남고 뒤로 까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 결국 불법어로행위를 해도 잡을 고기가 없어 수지타산이 안 맞는 현실이다. 단속기관에서 소형기선저인망을 ‘기업형’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을 전혀 모르는 소리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어민들은 “무조건 때려만 잡지말고 고양이가 쥐를 쫓을 때 달아 날 구멍을 열어두고 하는 것처럼 뭔가 살길을 열어주고 단속을 해주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감척사업이 어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도록 현실적인 보상지원금을 마련하고 작은 고기를 잡을 수 없는 트롤어법을 합법화 시켜 주는 일, 무조건 소형기선저인망만 단속하지 말고 다른 불법어업도 단속해 달라는 것 등 어민의 주장에 귀를 기울려 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어민의 입장에서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 주길 바라는 것이다.
어민들 또한 소형기선저인망의 양성화를 주장하기 앞서 조업금지 기간 조업 금지, 그물코 넓히기 등 최소한의 자정노력을 통해 어족자원 ‘싹쓸이’ 주범이라는 오명을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정부와 어민이 바다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역지사지’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박성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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