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송호의 청년시대 4] 30대 젊은 농군의 생존전략
[정송호의 청년시대 4] 30대 젊은 농군의 생존전략
  • 정송호 기자
  • 승인 2004.06.05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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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어머님 품처럼 포근한 고향으로 돌아와
우리 농촌을 기키는 당당한 파수꾼 이정만씨

농촌 현실은 심각한 고령화 현상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통과로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화양면 옥적리 대옥마을에 30대 농군이 7년째 농촌을 지키고 있어 주변의 귀감을 사고 있다.

청년시대의 네 번째 주인공은 농촌에서의 생존전략을 터득하며 10년 후를 보고 농장을 일구고 있는 이정만(33)씨다.

모내기가 막바지인 요즘 어디를 가더라도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이마에는 주름살이 가득한 바로 우리 부모님들의 자화상이다.

농촌의 고령화 현실은 이씨가 살고 있는 마을 또한 어는 농촌과는 다르지 않아 이씨는 마을 어른들의 농사일을 직접 도와 주고 있었다. 어제까지 화양면 곳곳을 다니며 로타리는 9만평, 모내기는 2만평을 끝내고 모처럼의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8년전 이씨는 늦깎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과 하루하루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에 후회를 하다 시간이 너무 아까워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26세의 나이에 어머님 품처럼 포근한 고향으로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

이씨는 처음 2년은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루종일 들판에서 일에 파묻혀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자식을 본 어머니는 "야 그러다가 몸둥아리가 성해 내것냐?, 사람잡것다"며 안쓰러운 자식을 위로했다.

이러한 고생 끝에 이씨는 2년 동안 개를 기른 수익금으로 임야와 농지를 구입해 그곳에 집을 짓고 현재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지금은 10년 후를 보고 또다시 '모든농장'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일구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 배우자를 찾지 못하고 홀로 살고 있어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씨는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전략이 있다.
바쁜 농사철에도 시간을 쪼개 스킨스쿠버 다이버와 화양 각 마을 다니며 방역을 하고, 농한기 때는 산불감시나 덤프트럭을 운전한다. 이렇게 틈틈이 버는 수입으로 '모든농장'을 조금씩 일구어 가고 있다.

그는 지금도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입을 만들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하고 있다.
그의 농장에는 매실과 감, 표고버섯 그리고 과수원에 울타리를 치고 염소와 닭, 또한 축사에는 개를 기르고 있다.

그 결과 농사를 시작하며 빚으로 구입을 했던 경운기, 트랙터, 이양기, 콤바인 등 각종 농기계의 대금을 이제는 모두 갚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축사를 더 지어 소를 기를 계획과 틈틈이 농장에 정원수와 화초를 심고 있다.

또한 농사는 그 이듬해의 수익보다는 몇 년 후에 수입이 창출한다는 경험 때문에 농장 곳곳은 실험장이 되어가고 있다. 현재는 농장 토질에 '가시오가피와 더덕'이 생육을 잘 하는지 실험중에 있었다.

처음 농사일을 시작할 때는 너무 힘들어 '술의 힘'으로 하루 하루를 견디어 내었지만 몇 해전부터 하루일과를 끝내고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배우기 시작한 검도가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주고 실력도 늘어 1단을 땄다며 매일 저녁 9시면 도장에서 도복을 입고 검을 잡고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스리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씨가 고향으로 돌아 온지 이듬해 그는 화양면에서 가장 젊은 '대옥마을' 이장을 2년 동안 했다. 하지만 젊은 이장의 눈에 보이는 농촌의 현실이 너무 답답해 그는 관공서며, 농협·축협을 다니며 마을일로 쓴 소리를 항상 입에 담고 살았다.

이를 지켜보던 주변의 선배 농군들은 이씨의 주장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그를 많이 아꼈다고 한다. 그때의 인연으로 고향에서 생활하며 형님이라고 하는 분들은 대부분 50∼60대라며 고령화된 농촌의 현실을 반증해 주었다.

또 그는 이장을 하면서부터 사회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현재는 여수한농연 총무와 화양면 자율방범대 총무, 그리고 시민명예경찰로 활동하며 어느새 미래가 불투명한 우리 농촌을 기키는 당당한 파수꾼이 되어 있다.

얼마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통과를 이야기하면서 "정부의 119조 지원책은 실상한해 농촌에 지원되는 한해 예산을 5년 동안 묶어 두면 그 정도의 돈을 만들어진다"며 "솔직히 빛 좋은 개살구다"고 정부정책의 모순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농민들의 동반자인 농협의 역할에 대해서도 "사실 농협의 금융업무에 너무 치우면서 우리 마을만 하더라도 대출금의 이자를 갚지 못해 압류와 경매로 농지의 절반정도가 농협 땅이 되어가고 있다"며 "이러다간 10년 안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며 농촌의 미래에 대해 걱정을 했다.

지자체에는 "도로변에 '옥수수, 콩의 고장 화양면'이라는 광고보다는 소비자와 직거래를 통해 서로 이득을 볼 수 있는 판로개척의 징검다리가 되어주었으면 한다"고 소규모 농가들의 판로개척의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생명산업인의 근원지 농어촌의 활성화는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고 있다. 그래서 보다 지속적이고, 보다 현실에 맞는 지원과 정책들이 만들어 져야 할 것이다. 또한 농촌도 세상 변화의 흐름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으로'라는 구호로만 남아 있지 않고 '30대 농부가를 부르고 있는' 이정만씨처럼 농촌에서 희망을 찾은 젊은이들이 늘어날 것이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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