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피해 신고했더니 ‘숨박꼭질’만
성매매 피해 신고했더니 ‘숨박꼭질’만
  • 박성태 기자
  • 승인 2004.05.29 2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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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등 7개 관계기관 책임전가 급급
다방에서 티켓영업을 해 온 여성들이 탈출을 감행해 신변보호를 요청할 경우 어디로 가야하나.
최근 한 달여 동안 여수시 봉산동 소재 Y다방에서 다방종업원으로 일하다 탈출한 이모(18)양과 조모(18)양의 경우, 윤락 여성으로 한번 낙인찍힌다면 쉽게 구제받을 길이 없다는 현실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들은 미성년자 신분으로 다방에 취업해 일할 수 없는 처지임을 알고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습득해 보건증을 발급받아 Y다방에서 일할 수 있었으나 뒤늦게 업주가 이 사실을 알게 돼 악몽의 나날을 보내게 됐다.
자신들을 상대로 신고를 한다는 욕설과 협박에 견디지 못한 이들은 마침내 지난 25일 자신들의 숙소를 탈출해 스스로 경찰 등 관계기관에 구조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28일 여수성폭력상담소를 찾아 도움을 받기까지는 무려 7개의 관계 기관를 찾아 헤매야 했다. 공포에 시달린 미성년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피해 사실을 알리려고 해도 모두 책임 전가에만 급급했다는 것.
이모양과 조모양이 가장 먼저 신고 전화를 한 곳은 인천경찰서. 추적 60분을 통해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청소년들을 악덕 업주로부터 구출하는 것을 봤던 기억에 26일 이곳을 찾은 것이다.
인천경찰서는 대처방법과 피해 여성들이 있는 곳이 여수라는 점을 감안해 여수경찰서로 신고를 하라고 설명해줬다.
이들은 곧바로 인천경찰서의 지시에 따라 114로 전화를 걸어 여수경찰서 전화번호를 안내받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자신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경찰의 말만 듣고 전화를 서둘러 끊을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담당 경찰에게 자신들이 미성년자 신분인 점, 업주의 강요로 티켓영업을 했다는 것. 타인의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보건증을 발급받아 취업했다는 것. 협주의 협박에 시달린 점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을 나무라고 다른 업무 때문에 바쁘다며 좋게 돈을 주고 해결하는 말과 함께 타인 주민증을 사용했기 때문에 구속될 수 있다는 말까지 곁들여 전화를 끊고 말았다. 이같은 내용은 여수성폭력상담서에서 이들이 자필로 진술한 사실확인서에 드러나 있다.
여수경찰로부터 외면당한 이들은 27일 김강자 서장이 재직했던 ‘종암경찰서’로 연락하게 된다.
이들은 “종암경찰서는 인천경찰서와 같이 하나에서 열까지 세밀한 부분까지 알려주시며 제가 보복하면 어쩌냐고 하니, 경찰서에서 보호해 주신다며 걱정말고 경찰서로 오라고 하셨습니다”고 말했다.
종암경찰서는 이들과 통화를 한 후 다시 피해여성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위치를 확인해 인근 경찰서로 신고하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배려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쪽에는 인맥이 어쩌고 하며 앵간한 일들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다 빠져 나오니 차라리 그곳에서 해결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며 여수 경찰에 대한 강한 불신을 밝혔다.
이에 종암경찰서는 이들의 사정을 감안해 여수경찰이 아닌 전남경찰청으로 전화를 해 구조 요청을 할 것을 주문했지만 이들은 전남경찰청으로부터도 별다른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잡힐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자신들이 피신한 곳의 순천경찰서로 연락을 하게 된다. 순천 경찰은 ‘755-9900’ 이라는 순천 가정폭력상담소 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순천경찰은 피해여성들을 엉뚱하게 성매매 전문기관이 아닌 가정폭력상담소로 인계한 것이다.
그러나 순천 가정폭력상담소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상태로 전화는 24시간 운영되는 여성보호기관인 ‘1366’으로 착신 연결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366도 이들을 외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후 7시가 넘어 전화를 한 이들은 지금 그곳을 찾아가 상담할 수 있냐고 물었으나 1366 상담원은 “내일 오라”며 차갑게 전화를 끊고 말았다. 25일 다방에서 벗어난 이들이 27일까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관계기관이 숨박꼭질만 시킨 셈이다.
28일 다시 순천 가정폭력상담소를 찾은 이들은 여수성폭력상담소를 안내받아 마침내 신변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여수성폭력상담소 강정희 소장은 28일 오후 5시경 이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상담소를 방문한 이들에게 그간의 사정을 전해듣고 경찰청 본청 여성청소년계로 전화를 걸어 관련 사실을 알리자 경찰청은 전남도경에 곧바로 수사 지시를 내렸다.
28일 오후 12시를 넘어 급파된 전남도경 기동수사대 5명은 관할 경찰이 외면한 피해 여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이들이 일했던 Y다방을 급습해 장부 일체와 관련 증거물을 압수하고 또 다른 종업원 2명을 구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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