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광주를 생각하며...
5월 광주를 생각하며...
  • 관리자
  • 승인 2004.05.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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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
24년전 5월 광주는 피로 물들여졌다. 소위 아군에 의한 국가폭력으로 집단학살이 무자비하게 자행되었던 현장이었다. 지금은 화려한 부활로 광주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끔찍한 살육의 아수라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광주 5월은 처절하게 부활하였다. 치열하고도 끈질긴 그리고 오랜 민주화의 투쟁 끝에, 우리 민중사에 있어서 최초의 승리를 이끌어낸 장엄한 역사로 부활하였다.
이른바 한국과 국제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역사에 있어서 국가폭력에 의한 집단학살이 비단 광주만의 문제일 것인가???
80년 5월로부터 32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에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이 두 사건에는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이라는 점 외에는 별 유사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32년전 여순을 진압하러 온 계엄군의 철모에 흰띠가 둘러져 있었다.
그로부터 32년후인 1980년 5월 광주에도 계엄군의 철모에는 놀랍게도 흰띠가 둘려져 있었다.
48년 여순에는 같은 군인들끼리의 접전 관계로 피아를 식별하기 위해 철모에 흰띠를 둘렀지만, 80년 광주에는 피아를 식별할 이유가 없었건만 역시 철모에 흰띠를 두르고 나타난 것이다. 다름아닌 계엄군의 역사는 이 군복식의 외형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철모의 흰띠는 이후로 계엄군의 상징이며 전통이 된 것이었다.??5월에 광주와 여수를 같이 이야기하면 아직은 다소 비약이 될지도 모른다. 체제문제라고 해서 서둘러 손을 내 젓거나 부정하는 몸짓이 의외로 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광주를 떠올리면 동시에 여수가 교차되어 떠오른다.
민주화를 위한 5월 광주의 치열한 저항과 분단 조국을 반대하는 10월 여수순천 일대의 전남동부지역의 광범위한 호응은 광주의 역사적 재평가만큼이나 중요한 현대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보아진다. 단지 광주 5월은 역사적으로 승리한 반면, 여수 10월은 아직도 패배한 역사 그대로이기에 그토록 미욱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이다.
잘못된 역사는 반드시 바로 잡혀져야 한다. 21세기 우리의 역사는 바른 자리매김을 향해,? 110년전 비적이라 불리워졌던 동학농민혁명과 일제 강점기의 일제강제징용 및 친일 반민족의 역사를 특별법 제정을 통해 현재 빠르게 역사적 복원과 진실규명에 접근하고 있다.
이 역시 광주 5월의 정신이 전 사회적으로 민주화 이행과정을 거치면서 확대 재생산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과거 청산과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국가 도덕성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이제 10월 여수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해야 할 시기가 점차 도래하는 것 같다. 여순사건에 관한 민간인 집단학살에서부터 진압군의 진압 행태와 일본군 출신의 성향, 무법적이고 초법적인 계엄법과 국방경비법의 적용, 미군의 강력하고도 실질적인 지원 과정 등 피학살자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진상규명을 위한 자신을 가져야 할 때라고 본다.
5월 광주의 정신과 에너지를 오늘의 여순문제를 푸는 에너지로 충전시켜보는 것은 여수 공동체가 풀어야 할 절대적인 우선 과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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