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장과 기자의 ‘무안골프회동’
부시장과 기자의 ‘무안골프회동’
  • 관리자
  • 승인 2004.05.0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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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부시장 일부 기자들과 일요일 골프회동
"시장 공석과 도지사 상중에 그럴 수 있나”
광주 시민의소리 이광재기자
일요일이던 지난 2일 오전, 전남 무안군의 한 골프장에 광주 손님 10여명이 찾아들었다. 광주시장 권한대행을 겸하고 있는 심재민 행정부시장을 비롯한 시청 고위공무원들과 시청에 출입하는 8명의 기자들이었다.
각 네 명씩 한 팀을 이룬 이들은, 시청 집행부 한 팀과 기자단 두 팀 등 모두 세 팀으로 나눠 필드에서 게임을 즐겼다. 굳은 날씨에 비를 머금은 바람도 거셌지만, 이들은 즐겁게 게임에 임했고 이후 고깃집에서 점심도 함께 했다.
같은 시각, 서울구치소에선 직무가 정지된 박광태 광주시장이 수감 95일째를 보내고 있었고, 전남도청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선 지난달 29일 투신자살한 고 박태영 전남도지사의 장례 일정이 나흘째 계속되고 있었다.
박광태 시장의 구속, 박태영 전남도지사의 자살, 그리고 ‘미니 지방선거’로 이어지는 뒤숭숭한 상황에서 과연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그린을 누볐을까.
당시 ‘무안골프회동’에 참석한 심재민 부시장을 비롯한 시청고위 공무원, 그리고 일부 참석 기자들의 말을 통해 당시 정황과 배경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박시장의 구속 이후 100일 가까이 광주시청은 비상근무체계로 움직였다. 심재민 부시장의 경우 주말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공무원들의 ‘골프’도 금지됐다. 하지만 광주지하철 개통 등 굵직한 사안들이 정리됐고 비상근무가 장기화될 경우 ‘비상’의 효과가 없어지기에 5월 들어 비상체제의 해제와 함께 운동(골프)도 ‘해금’이 됐다.
앞서 심부시장은 2주 전 시청 출입기자들에게 ‘골프가 해금되면 운동 한번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일부 기자들이 맞장구를 치면서 골프장에 사전 예약을 했다. ‘약속 지키기’는 골프 예절 가운데 으뜸이라 한다. 무안 컨트리클럽에서 그린피(1인당 9만7천원)는 기자들 개개인이 냈고, 캐디비를 비롯한 잡비와 점심식사비(100만원이 약간 못됨)는 심부시장이 지불했다.
“이런 것도 기삿거리가 됩니까”, “백일 가까운 비상근무체제를 해제하면서 운동한번 하려던 것뿐입니다”- 참석 공무원
“우리가 운동하러 가서 죄라도 지었나”, “날짜를 옮기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한번 잡힌 일정이라…” - 참석 기자

지난 6일 취재과정에서 나온 ‘골프회동’ 참석자들의 발언이다.
#그림1오른쪽#이들의 항변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심부시장은 “시장님 유고라 해서 운동하지 말란 법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운동(골프)을 하려면 한참 전에 서로 날짜를 맞추어야 하는데 갑자기 취소한다면 여러 사람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된다”며 강행 이유를 밝혔다.
심부시장은 또 ‘시민들이 ’하필 이런 때에 가느냐‘고 지적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잘 몰라서 오해가 있다면 정상적으로 (시민들을)이해를 시키는 것이 좋다. 모르는 일반 인식을 옳은 것으로 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다.
또한 시청 출입기자단 간사이면서 골프회동에 참석한 한 방송사 김모 기자는 “우리가 죄 짓고 온 것도 아니고, 그저 운동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운동 한 번 한 것을 확대해석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갖는 기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신문사 오모 기자는 “당시 공개적으로 말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찝찝하다는 생각들은 다들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면서 “기자적 양심으로 떳떳하다고 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다른 방송의 양모 기자는 “골프라는 운동은 약속이 아주 중요하다. 특히 무안은 전국에서 찾아오기 때문에 부킹하는 것도 쉽지 않아 이미 정한 약속을 갑자기 바꾸기도 쉽지 않았다”고 불가피성의 이유를 대기도 했다.
이들의 골프회동이 만약 박시장의 유고상황이 아니었고, 도지사의 장례가 없었다면 그냥 ‘운동’정도로 봐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석자 내부에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박시장의 유고를 이유로 달리기나 수영 등이 금지 운동 종목으로 지정됐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는 이상 골프는 분명 ‘조심스러운 운동’이었다.
결국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미 정해진 골프 약속’이었고, 이것은 당시 시도민들의 정서와 분위기보다 우선이었던 것이다.
한 일간지의 표현처럼 ‘양 시도민의 정신적 공황상태’에 대한 시정 책임자와 일부 기자들의 안이한 인식은, 결국 이들이 펼치는 행정과 쏟아내는 기사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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