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초오유 원정대 등반기[5]
2003 초오유 원정대 등반기[5]
  • 김종철 기자
  • 승인 2004.05.02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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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 Driver's BC에서 휴식을 죽음에 이르는 병 고산병, 그러나 병이 아니다
히말라야 등반은 물론이고 여행을 위해서 꼭 극복해야 할 부분이 고산병이다. 공기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희박해지는데 5000m가 해수면의 1/2,8000m가 1/3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하여 너무 빨리 올라가게 되면 여러 가지 장애가 발생하게 되는데 고산병이라고 한다. 가벼운 증상은 무기력증이나 기침 같은 증상이고 심할 경우는 폐수종이나 뇌수종으로 나타나는데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최선의 치료 방법은 하산하여 고도를 낮추는 것이다. 등반 중에 자신의 증상이 나빠질 때는 즉시 하산해야 한다. 자고난 다음날은 내려갈 능력이 없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고소 적응 때문에 5일을 이 곳에서 머무르며 베이스 캠프로의 입성을 준비 했다. 잠을 잘 동안에 순간적으로 호흡이 멈추는데 무호흡증이라고 하며 고소에 오면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었고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며 무전기 테스트도 하고 야크에 짐을 싣기 위해 30kg단위로 포장을 마무리 했다.

8.30 맑다가 비 드디어 캬라반 시작
교통 수단이 끊긴 시점부터 베이스 캠프까지의 등반을 캬라반이라고 하는데 오늘 드디어 캬라반이 시작되는 날이다. 국내에서 출발한지 보름이 지났지만 아직 초오유 밑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정부연락관과 야크맨들이 짐을 저울질하고 있는데 관대한 편이어서 시비는 일어나지 않았다. 12시 10분 야크들이 출발하고 우리는 뒤를 따라갔다. 50분 정도 올라가다 강을 왼쪽으로 횡단해야 했는데 물살이 보통이 아니었다. 가장 넓은 곳을 선택하여 준비한 샌달을 신고 스키스톡으로 균형을 잡으며 신중하게 건너가야 했다. 물이 차고 매우 빨랐다.
강을 건너 지루한 빙하지형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느리게 보인 야크들은 어느 새 보이지도 않았다. 갈수록 다리에 힘은 빠지고 숨이 가빠졌다.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오는 가운데 17시에야 5300m에 도착했다. 텐트를 치고 막영 준비를 했다. 야크맨들은 조그만 짐에서 텐트를 내려 설치하는데 느린 듯 하면서도 능숙하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가지고 온 연료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날씨는 눈과 비가 섞여 내리는 험악한 상황이었으나 그들은 이러한 생활을 옛부터 이어 와서 그런지 평상시 생활처럼 느끼는 듯 했다. 야크들은 이러한 날씨에 어떻게 밤을 보낼까 걱정이 되었으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8.31 흐린 후 눈 드디어 베이스 캠프로 입성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았다. 야크들은 추위에 강한 동물이었다. 밤새 내린 비로 오히려 더 깨끗해진 상태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10시 40분 베이스를 향해 출발했다. 지형이 점점 나빠진 가운데 야크를 다루는 휘파람소리가 요란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전신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여 의지와는 관계없이 한 걸음 옮기기가 힘들었다. 오른편으로 초오유 산군에서 흘러 내려오는 하얀 전형적인 빙하가 장엄하게 흘러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도 아름다움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나에겐 한 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쉬운 상태였다. 벌써 부족한 공기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호흡은 가쁘고 다리는 안 움직이고 죽을 지경이었다. 거의 탈진한 상태로 베이스 캠프(5600m)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텐트를 치고 짐 정리를 해 놓은 상태였다.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위로 초오유가 보이고 오른 쪽으로 낭파라 고개가 흰 눈에 덮인 채 네팔과의 국경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고개는 옛부터 네팔과의 교역을 위하여 사람들이 넘나들던 곳이며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나 네팔 정부도 묵인하고 있는 상태여서 어떠한 관공서도 없다. 이 고개를 넘어 가면 남체에 다다를 수 있다.

9.1 맑은 후 눈 베이스 캠프 구축
새벽에 머리가 녹아내리는 듯한 심한 두통에 잠을 깼다. 일어나 진통제를 찾으려고 하나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권호 대원에게 부탁하여 타이레놀을 먹고 누워 있었더니 두통이 없어지며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말끔하였다. 다행이었다.
무사 산행을 비는 라마제를 준비 했다. 의식을 위해 셀파들이 가져온 기를 걸고 음식을 간단히 준비하여 시작하였는데 엄숙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뭐라고 중얼중얼 하며 경을 읽는데 남아 있는 종이가 책 한 권 분량이었다. 지루한 것을 가장 참지 못하는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오후에는 돌을 날라 식당텐트를 만들었는데 돌을 나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평지 같으면 아무 것도 아닌데 조그만 돌을 드는데도 숨이 끊어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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