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전남도 경제살리기 혼신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단독인터뷰]“전남도 경제살리기 혼신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 박성태 기자
  • 승인 2004.05.01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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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태영지사 집사 정창옥 전남도민원실장
<광주:박성태기자>고 박태영 전남도지사의 ‘집사’ 정창옥 전남도종합민원실장. 지난 92년 14대 국회때부터 13년간 잠자는 시간을 빼고 고인의 곁을 지켰던 그에게 박지사의 투신자살 소식은 한마디로 날벼락이였다. 이틀째 검찰조사로 지친 박지사가 사고 당일 한끼 식사도 못한 채 구토와 식은땀을 흘리는 안타까운 모습을 쓰라린 가슴으로 지켜봤다. 검찰로 향한 고인에게 ‘잣죽 한그릇’ 마련해 드린게 그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30일 고인이 안치된 조선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빈소를 지키는 정실장을 만나 사고 당일 상황과 사망원인, 고인에 대한 추억 등을 들어보았다.
1. 언제부터 박지사를 모셨는가.
-고인이 지난 92년 14대 국회에 들어가실 때부터 13년간 밀착수행을 했다. 잠자는 시간외에는 고인의 곁에 있었던 것 같다. 13년간 모셨지만 정말 깨끗한 분이다. 명예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면서 혹독할 정도로 일만 하셨다.
2.4월 29일 사흘째 검찰 소환을 앞두고 대책회의를 가진 것으로 안다.
-서울팔래스 호텔에서 변호사의 자문을 받는 자리가 있었다. 박지사는 이틀째 검찰 조사에서 건강보험공단 재직시 인사청탁과 납품 비리와 관련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완강히 부인했다. 따라서 이 날 변호사들은 마지막 소환 조사를 앞두고 부인을 한다고 해도 기소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여러 안을 제시했다. 그 중 하나가 일부 시인한다면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였다. 변호사들은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형량을 낮추는 쪽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박지사는 변호사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어떻게 “안한 것을 했냐”고 하면서 “소신대로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림1중앙#
3.일부 언론에는 박지사가 변호인을 통해 특가법상 뇌물수수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죄명을 바꿔 줄 것을 제안한 것으로 보도됐다.
-나도 오늘 아침 조간을 보고 알았다. 한마디로 말도 안된다. 변호사들의 제안에 지사는 완강히 거부했는데 어떻게 죄명을 바꿔달라고 제안할 수 있냐. 박지사의 완강한 부인에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박지사의 뜻과 무관하게 변호인과 검찰이 합의점을 찾는 과정에서 그런 말이 나왔을 지도 모르지만 죄명을 바꿔달라고 제안하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이때 대책회의에 동석했던 전남도 이개호국장도 일부 시인 보도는 말도 안된다고 정실장을 거들었다.) 건강보험공단 재직시 판공비가 남아 돌았는데 왜 사금을 쓰겠는가. 이건 상식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4.사고 당일 검찰 출두 시간이 늦어졌는데 특별한 이유는.
-27일,28일 이틀 연속 오전 9시부터 저녁 12시까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으면서 심신이 상하신 것 같다. 사고 당일도 오전 10시 30분까지 검찰에서 출두하라고 했지만 구토와 식은땀으로 통증이 일어 11시로 1차 연기했다가 다시 오후 12시 30분으로 연기했다. 검찰에서 하루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을 줬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너무나 안타깝다. 사고 당일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변호사들의 자문을 받고 오후 12시 17분 경에 변호사 2명과 동승해 검찰로 향하셨다. 그러나 출발 직후 또 다시 구토증세가 일자 변호사들은 차에서 내리고 동부이촌동 병원으로 기사와 단 둘이 가셨다.
#그림2중앙#
5. 유서가 발견되지 않아 사망원인에 대해 추측이 난무하다.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이미 구속된 건강보험공단의 측근 인사들이 진술한 내용을 보고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셨다. 또한 공무원노조가 조사를 받는 동안 남부지검앞에서 1인시위를 했는데 고인은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나도 이렇게까지 해야겠냐며 1인시위 관계자에게 항의도 했지만 너무 한 것 아닌가. 도민과 지역발전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판사판으로 가자는 것은 안 될 일이였다. 여기에 혐의 사실을 부인한다고 해도 기소가 불가피하다는 변호사들의 판단이 더해지면서 막다른 길로 내 몰리신 것 같다. 아무튼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고인은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 이 사건에 무관하다고 항변하셨기 때문에 검찰 수사에도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으셨다. 변호사 선임도 검찰 조사 첫날 오후에서야 했을 정도다.
6. 고인의 열린우리당 입당에 대해 중앙당이 애매한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정치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총선 전 지사님을 영입하기위해 열린우리당 고위층 인사들이 수차례 지사님을 만나 입당시키기 위해서 노력해놓고 이제와서 나몰라라 그럴 수는 없지 않는가. 내가 비화를 다 말할 수 없지만 그래선 안된다고 본다.
7.고인이 생전에 꼭 하시고자 했던 일은 무엇인가.
-지사께서는 전남도가 16개 시도 가운데 가장 못살고 있다며 최소한 7,8등은 해야한다고 늘 말씀하시고 임기내에 전남 경제살리기에 혼신을 다하셨다.(이와관련 전남도는 박지사가 재직시 투자유치교섭 607개 업체로부터 1조7434억의 투자실적을 거뒀다고 30일 밝혔다) 오늘도 고인의 마지막 작품인 대불공단 현대미포조선소 기공식에 참석하실 예정이셨는데 안타깝다. 전남도 투자유치과장이 빈소에서 통곡하는 것을 봤다. 그만큼 경제살리기에 주력하셨다. 고인은 외국을 나가셔도 흔한 골프 한 번 안쳤다. 사고 당일 미망인께서는 시신을 확인하고 “지사님이 불쌍하다”고 첫 마디를 꺼내며 통곡했다.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 한 번 가지 않고 일만 하신 고인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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