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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송호의 청년시대 3]'여수의 아들'오영권 열사를 기리며
[정송호의 청년시대 3]'여수의 아들'오영권 열사를 기리며
  • 정송호 기자
  • 승인 2004.04.29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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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6년 'YS정권 타도 반미'외치며 분신
8주년 추모식 30일 여수대서 열려
올해는 '대통령 탄핵'과 '4·15 총선 결과'에 묻혀 유난히도 '4·19혁명'에 대한 보도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던 같다. 하지만 '4·19'와 관련돼 우리지역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8년전 사건을 떠올리며 자신의 목숨과 주장을 맞바꾼 한 청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편집자주>

44년전 4월 19일은 종신집권(終身執權)을 노린 이승만 대통령의 지나친 정권욕(政權慾)과 독재, 또한 그를 추종하는 자유당의 부패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평불만이 누적 되 학생들은 더이상 현실을 좌시 하지 않고 궐기한 날이다.

또 정의와 민주수호를 위해 궐기해야만 하는 선언문을 낭독하며 일어선 4·19혁명 기념일이지만 요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는....

우리지역에서는 4·15총선 결과로 4·19혁명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그러한 행사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대학에서 40여년 전의 역사적 사건을 돼새기고 '정의와 민주수호'를 외친 청년들의 정신을 기리고자 뜀박질대회를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아쉬움은 8년전 기억으로 되돌아가 우리들에게 지워져 있는 '오영권'이라는 한 대학생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없는 그 한 대학생은 1996년 4월 19일 4·19집회를 마치고 여수대학교(현재 국동캠퍼스)에서 '김영삼 타도, 미제축출, 조국통일'이라는 몇 마디 유서를 남기고 분신을 한 당시 약관 20세의 '자주의 꽃, 통일의 넋' 오영권 열사다.

오영권 열사 장례식을 치루었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동 여수대 캠퍼스∼충무동 로타리, 그리고 여수경찰서 앞에 모인 광주전남지역 수천의 대학생들과 수많은 시민들은 여순사건 이후로 여수시내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운집한 적이 없었던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경찰서앞 항의 집회시 골목에서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며 집회 광경을 보며 깊은 시름에 잠겨있던 노파들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며 아마도 우리지역의 역사의 아픔상처인 여순사건 당시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오영권 열사는 76년 여수에서 태어나 95년 여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여수수산대학교 식품공학과에 입학했다. 다른 새내기들처럼 친구들과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에 미팅에 동아리활동에 자유를 느껴야할 나이였지만 그는 '청경교지편집위원회' 활동하며 친구들과는 다른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더욱이 그는 95년 6월 13일 여수순천지역 대학생들이 순천대학교에서 연합지회를 하던 중 경찰의 직격탄에 왼쪽 눈을 맞아 실명을 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한달 반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하고, 한 학기 휴학생활을 하며 날새기로 술을 마시며 밤새도록 길거리를 배회 한 적도 있다고 유품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보면, 김영삼대통령은 92년 대통령 후보를 예약 받고 3당 합당을 통해 문민정부를 창출하였다. 하지만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통해 쌀수입 개방과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로 수많은 청년 학생들을 이적단체로 규정해 많은 수배자를 지금 까지도 양산하고 있다.

또 97년에는 'IMF사태'를 통해 우리경제를 파탄의 지경으로 몰고 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어서 인지 96∼97년에는 유난히도 자신의 목숨과 주장을 맞바꾼 젊은 청년들이 많았다.

그때 당시 오영권 학생과 함께 생활을 했던 한 선배는 그의 성격에 대해 '영권이는 학과나 교지편지국 생활은 매우 모범적인 이었다. 착하고 고집이 좀 센 편이었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주변이 없지만 떠듬떠듬 거리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처럼 굽히지 않으려고 했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현재 여수대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올해 '오영권열사추모사업회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명예졸업장 수여'와 '학내 기념비'사업등 본격적인 추모사업을 펼칠 계획을 가지고 있어 그래도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금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현재 여수대 인문관 2층에 분향소를 설치하였지만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으며, 4월 18일에는 동문 선·후배들과 전국대학교지연합회회원 50여명이 여수시립묘지를 찾아 그의 묘소에 참배를 했다고 한다. 또한 30일에는 여수대 인문관에서 '자주의 넋 통일의 아들 오영권 열사 추모제'를 치룰 예정이라고 한다.

지나간 역사의 중심에 한 획을 그었던 사람들의 뜻과 사건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들 주변에 소리나지 않게 역사의 물줄기를 올바르게 흘러가도록 바로잡는데 밑거름이 되었던 소중한 사람들의 넋을 기려 보는 것도 소중할 것 같다.

특히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한 청년을 생각하며 8년전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도 아름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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