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물의 고장' 여수
‘고운 물의 고장' 여수
  • 관리자
  • 승인 2004.04.2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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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이름이 있듯이 땅이 가지고 있는 이름을 지명(地名)또는 땅이름이라 합니다.? 땅이름은 인류의 생활과 함께 생성되어 정착되어 불려지기까지는 독특한 기연과 의미를 가지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땅이름은 조상이 남겨놓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온갖 전설과 풍속 문화 등 옛 향기가 묻어있을 뿐 아니라 그 지방의 독특한 자연과 생활풍습까지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여수지역에는 조개더미, 고인돌 등의 선사유적을 비롯한 다양한 역사유물을 통하여 전해오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수많은 땅이름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여수의 땅이름에는 여수의 역사와 함께 여수의 문화와 여수의 정신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이런 여수의 땅이름을 율촌에서부터 시작하여 삼산면 거문도까지 한 곳 한 곳 살펴보면서 여수지방에 전해오는 땅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수지방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시간에는 임진왜란 이전의 역사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지역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여수지역에서 발견되거나 출토되는 선사시대 유적인 ‘비파형청동검’이나 ‘옥’, 그리고 산재해 있는 산성유적, 세계최대의 ‘왕바위고인돌’? 등을 통해서 이 지역에는 강력한 해상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때에는 여수지방을 어떤 명칭으로 불렀는지 알 수가 없고 여수지방이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 권37의 잡지 지리 백제(百濟)조(條)인데?백제는 전국을 5방제로 나누어 다스리게 되고 이때 여수는 남방 구지하성(久知下城)아래 삽평군(?平郡)-감평군(?平郡)이라고도 하는데 최근 학자들은 이를 삽(?)자와 비슷한 감(?)이란 ! 한자의 오기(誤記)로 본다.-로 에 영속된 현으로 오늘날의 석창을 중심으로한 원촌현(猿村縣)과 돌산을 중심으로한 돌산현(突山縣)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 경덕왕(757)때 전국을 9주5소경으로 나누고 전국의 지명을 한자말로 바구었는데 이 때 여수는 해읍현(海邑縣), 돌산은 여산현(廬山縣)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기록인 해읍현과 돌산도 와 그 주변의 여산현은 통일신라말엽에는 모두 후백제 견훤의 휘하에 들었고 고려의 건국과 함께 전국을 주, 부, 군, 현 제로 고치면서? 해읍현과 여산현은 다시 여수현(麗水縣)과 돌산현이 되는데 이때가 서기 980년 고려태조 23년으로 비로소 여수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되게 됩니다.
해읍현을 여수로 고친 것으로 보아서 바닷가 고을이라는 의미를 미화하여 고울려(麗)와 물수(水)를 써서 고운 물의 고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후 여수는 그 이름을 계속 사용하다 조선의 개국을 맞게 되었으나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불복한 여수현의 마지막 현령인 오흔인의 절개에 맞서 태조5년 (1396년) 여수를 폐현하기에 이릅니다. 이때부터 여수는 이름을 잃고 있다가 1897년에야 여수군이 설치되면서 이름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여수는 비록 여수라는 현의 이름은 잃었지만 고려말부터 심해진 왜구들의 노략질로 인해 군사상 중요한 요충지로서 그 역할을 다 해 왔습니다.
지금의 삼일면 상암동 지역에 있던 진례만호와 화양면 용주리 일대에 있던 돌산만호 등은 조선초기 이 지역 해상방어의 요충지였다가 왜구의 침입이 거세지자 내례포와 방답으로 옮기게 되고 급기야는 고흥 여도에 있던 전라좌도 도만호를 옮겨 지금의 진남관자리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 줄여서 전라좌수영이 설치되기에 이릅니다.
전라좌수영은 이 후 임진왜란을 맞아 이 지역 조상들의 지혜와 기상과 함께 충무공의 전술이 어울려 거북선과 함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전라좌수영은 애칭으로 매영(梅營)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현 고소동인 고소대에? 초봄이면 매화꽃이 만발하여 이렇게 불렸다고 전해집니다. 최근 매화를 심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고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광양시의 매화 이야기를 들으면 매화가 많아 매영이라는 이름까지 지었던 여수의 아름다운 매화는 사라지고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그 후 1914년 일제치하에서 행정구역 개편이 있어 돌산군과 여수군이 통합되면서, 지금의 석창을 중심으로 하던 땅이름 여수는 행정의 중심지인 좌수영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여수시의 승격으로 여천군과 나눠지고 여수산단의 건설로 여천군과 여천시가 또 나눠졌던 여수의 이름은 900여년을 사용했던 석창을 중심으로 한 군 지역 사람에게서 90여년을 사용하던 좌수영과 종고산을 중심으로 한 도시지역 사람을 구분하던 이름이 되기도 하였지만 1998년 4월 3여가 통합이 되면서 여수반도의 지역민을 한 도시의 이름으로 묶으면서 세계속으로 비상을 꿈꾸는 아름다운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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