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근로자들의 온정 '눈시울'
일용근로자들의 온정 '눈시울'
  • 박성태 기자
  • 승인 2004.03.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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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전소된 동료 어려움 알자 앞 다퉈 모금 전개
30일 오후 9시경 여수시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한 인력사무소는 훈훈한 온정의 손길이 펼쳐지는 동안 웃음꽃이 가득했다.
일용근로자들이 십시일반 자발적인 모금에 나서게 된 것은 동료 한 사람의 딱한 사정때문이였다.
경남 마산에서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 지난 2002년 2월 빚잔치를 피해 여수로 오게 된 강모(50)씨는 뜻하지 않은 화재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수정동의 한 판잣집에서 일당벌이를 해 오던 강씨는 지난 28일 전기누전으로 집 전체가 전소돼 속옷만 걸친 채 길거리에 앉게 됐다. 두 자녀를 둔 강씨는 타향살이에 지칠때마다 위로를 삼았던 소중한 가족사진 마저 잃고 말았다.
이런 사정을 안 여수 터미널인력소 동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를 마다하지 않고 모금 운동과 잠자리까지 제공해 집을 잃은 강씨를 위로했다.
이같은 광경을 지켜 본 터미널인력소 대표는 “내 주위에서 벌어진 어려운 일에 한결같이 어려운 사람들이 선뜩 나서는 것을 보고 놀랬다”며 “이들의 용기있는 행동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인력사무소는 그동안 노숙자나 부랑자 집단으로 취급받으면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며“그러나 수준 높은 온정의 손길을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정말 살아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감회를 밝혔다.
강씨의 기구한 사연을 전해들은 목수 구모씨는 선뜻 20만원을 내놓고 76살의 모친을 모시고 사는 정모씨는 자신의 집으로 강씨를 데려가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모두 '자기 코가 석자'인 사람들이지만 동료의 고통을 위로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강씨는 아직 구모씨가 준 20만원을 차마 쓸 수가 없어 인력사무소 대표에게 맡겨두고 있다.
강씨는 “그 분의 마음이 아름답지만 짐이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비록 불행한 일이지만 이번 일로 불처럼 내 인생도 활활 타올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거듭 감사의 말을 동료들에게 전했다.
강씨는 동료들이 마련 해 준 돈을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 주인에게 돌려 줘 조금이라도 힘이 되길 바라고 있다. 동료들과 함께 철거하는 일에도 무료 봉사도 할 계획이다. 17년 동안 창호공사를 하다 IMF 한파에 그만 무너지고 만 강씨는 가족들을 마산에 두고 객지에서 피말리는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피붙이 이상의 든든한 가족을 만나 용기와 힘을 얻고 있다.
“IMF 때도 인력사무소는 살아 있었다”말이 기자의 귓전을 인터뷰 내내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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