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여수초유원정대 등반기[3]
2003 여수초유원정대 등반기[3]
  • 김종철 기자
  • 승인 2004.03.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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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 30분 달려 고도3200m'니알람'에 도착했다

2003.8.22 흐림 " 드디어 중국 국경을 넘다"
아침부터 좋지 않은 소식이 왔다.
우리의 염려대로 트럭이 아직 물을 건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짐을 놔두고 우리만 갈 수 없기에 여러 의견이 분분했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부터 로프를 설치해서 짐을 옮기자는 의견 등 여러 말들이 나왔으나 이 모든 것들이 불필요한 노력이 되었다. 거짓말처럼 우리들의 짐을 실은 트럭이 도착한 것이었다.
10시에 코다리의 네팔 세관을 통과하고 우의교 위에서 중국 정부연락관을 기다렸다. 우의교는 중국과 네팔을 잇는 다리로 30m 정도 된다. 아래의 계곡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속도가 폭포를 연상케 할 정도였다. 소리도 요란하고 건넌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리 중간에 황색으로 선이 그어져 있었는데 국경을 뜻하는 듯했다. 다리의 중간이 아니라 계곡을 흐르는 물의 중간 지점과 일치했다. 나는 국제법을 모르나 국경을 정할 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건너편에 큰 글씨로 ‘中華人民共和國’이라고 씌어 있었다. 금방 걸어 들어가면 될 텐데 국경이 무엇인지 따분하기만 했다. 유심히 보니 국경 근처에 사는 티베트 인들이 많이 넘어 오고 있었는데 버스표 비슷한 간단한 표만 보이고 통과하고 있었고 그 들이 가진 짐들은 카페트 종류가 많았다. 네팔로 팔러 가는 듯했다. 양을 몰고 넘어 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호주머니에 손 넣고 유유히 양을 몰고 자기 동네 길 가듯이 통과하고 있었다.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정부연락관이 나타나 국경을 통과 하였다. 짐을 중국 트럭에 옮겨 싣고 산사태로 위험한 길을 올라 13시 국경 도시인 장무에 도착했다.
장무는 그래도 건물이 현대식이고 슈퍼마켓, 식당과 중국의 관공서가 있어 사람 사는 듯 했다. 점심을 먹었는데 우리 입맛에 맞았다. 슈퍼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다시 티벳을 향해 출발했다. 갈수록 길이 험악해지더니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어졌다. 차가 갈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도중에 내려서 살펴보니 옛날에 이 곳을 넘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넘었을까 의심이 되었다. 가도 가도 사람의 흔적은 없고 과거에는 이 길이 거의 절벽에 가까웠을 터인데 ……. 많은 군사가 이 길을 넘는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해 보였다. 이 곳이 국경이 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도로가 끊어질 듯한 곳은 절벽을 'ㄷ’자로 파서 연결해 놓았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주변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티벳 고원에 접어든 것이었다. 물이 풍부했던 조금 전까지와는 180도 다르게 땅은 건조해 먼지가 날리고 산에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불과 몇 킬로의 거리를 두고 자연환경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완만한 경사를 계속 달려 18시 30분 우리나라 면소재지 정도의 니알람에 도착했다.(고도 3200m)
제법 쌀쌀하여 옷을 꺼내 입고 저녁 식사를 했다. 숙소에 왔으나 시설은 별 신통치 않았다. 창고 보다 조금 나은 호텔방과 새벽에나 들어오는 전기, 칸막이 없는 화장실, 바가지로 떠다가 사용해야 하는 세면시설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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