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 서선택 기자
  • 승인 2004.03.25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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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성지 탐방] (사)여수애양병원
한국 최초의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은 1925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번지에 터를 마련하고 1928년 한센병 환자 600여명을 옮겨와 지금의 애양원을 이루게 됐다. 이어 1936년 여수애양원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애양원 시대를 열었다.
애양원 환자와 선교사, 의사의 신앙적 터전이었던 애양원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여수노회 소속 교회로써 애양원의 부속 전도실로 출발했다. 애양원 교회의 제2대 담임목사인 손양원 목사는 39년 7월 14일 부임해 목회를 시작했으며 같은해 일제에 항거한 순천노회의 ‘원탁회사건’으로 검거돼 옥고를 치뤘다.
또 손양원 목사는 50년 한국전쟁당시 신앙을 지키다 애양원 환자들과 함께 순교했다.


■ 기독성지 애양원 역사
애양원은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부터 비롯됐다. 1904년 2월 목포 선교부에서 광주 선교부를 개설하기로 하고 벨목사와 오웬목사를 파송해 광주 선교부를 만들게 됐다.
12월 25일 첫 예배를 드린 후 목사이자 의사였던 오웬은 전라남도 동부지역의 능주, 남평, 화순, 장흥, 보성, 강진, 순천, 여수 등지를 맡아 선교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오웬목사는 1909년 4월 급성 폐렴으로 순교하고 만다. 당시 오웬목사의 치료를 위해 목포에서 활동하던 의사 포사이드를 광주에 급파하게 되고 광주 인근인 남평에서 길가에 버려진 여자 한센병(일명 나병)환자를 발견하고 광주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윌슨과 선교사들에 의해 치료받게 된다.
윌슨과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사택 건축을 위해 벽돌을 굽던 가마터를 단장하고 그 곳에서 여자 한센병 환자를 거처하게 하면서 치료를 하게 됐다. 이 치료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 서양의학으로 한센병을 치료한 효시가 됐다.
그 후 1909년 여름 광주 인근의 봉선리에 작은 집을 짓고 한센병 환자 20여명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나병원인 광주나병원의 시작이었고 1928년 여수로 터를 옮긴 후 1936년 여수애양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 애양평안요양소
현재의 역사박물관 건물에서 시작된 애양평안요양소는 1972년 평안사를 개설하여 76년 음성 한센병 환우 250명을 현지에 정착시키면서(도성농원)비롯됐다. 그 후 1986년 지금의 평안요양소로 개칭해 시설허가를 받았고, 1992년 증축 불우한 한센병 환우들을 치료하고 보호하는 시설로 발전을 거듭했다.
또한 시각장애인 한센병 환우들을 위해 성경암송반 건물을 지어 신앙생활의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보살피며 운영하고 있다.
입소 정원 250여명에서 현재는 140여명으로 감소하였으나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이 상주하며 치료와 진료를 맡고 있다. 취사와 세탁을 담당하는 생활보조사등 총 15명의 인원이 이들과 함께 하며 돌보고 있다. 고령 환우와 장애인 환우의 건강한 노후를 위해 매일 물리치료를 실시하고 있으며, 환우들의 마음의 평안을 위한 예배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 애양병원역사관
역사박물관은 애양원이 여수로 이주한 후 현재의 현대식병원이 세워지기 전까지 한센 환우들을 치료했던 병원 본관 건물이었다. 역사박물관은 현대식 병원이 세워진 후 한동안 양로원으로 사용 되기도 했다.
그후 개보수하여 애양원 역사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박물관은 애양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당시에 사용되었던 의료 기구들,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의료진들, 그 외 환우들의 생활상 등이 옛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한센 환우들을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이 박물관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사랑을 체험하고 느끼게 해주는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 재활기술보도소
한센병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냉대로 인해 그들만의 공간에서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아야 했다. 지체장애인 또한 사회적 무관심속에 방치되어 평생을 가난의 고통으로 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재활수술을 통하여 치료가 되었다 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스스로 자립하거나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이런 문제를 고민하던 애양원에서는 기술학교를 설립하고, 1974년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양재기술교육과정을 개설함으로써 장애인들에게 자립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한편,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본인과 가족들의 정신적 재활을 돕고 있다.
1985년에는 재활직업 보도소 건물을 신축하고, 1992년에는 3층을 증축하여 93년 3월에 완공하였다. 현재 교육생 전원의 기숙사 생활이 가능하며, 이 곳을 거쳐 전국에서 자립한 장애인들은 400여명에 이르고 있다.
현재 2년 과정의 양재기술(재단,재봉)과정과 컴츄터교육(사무자동화교육, 인터넷)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그림1왼쪽#한센병, 지체장애환자, 피부과 전국 최고

정형외과= 정형외과 전문의 3명과 그 외의 스탭진으로 구성 되어 있으며 1999년에는 외래환자 3만여명을 진료했고 2,500여명의 환자를 수술했다.
1960년 이전에는 한센병환자의 재건수술을 했으며 1980년대까지는 소아마비 환자의 재건수술 등 장애 교정술을 실시했다. 최근에는 고관절 및 슬관절의 인공관절치환술과 척추질환에 대한 수술을 하고 있다.
진료분야에는 선천성 기형, 감염증과 그 후유증, 하지마비 장해로 인한 불구교정수술, 상지마비 장애로 인한 불구교정수술, 종양, 골절, 인공관절 치환술(고관절, 슬관절, 견관절)기타 정형외과 수술과 최신 골밀도 기계를 도입해 골밀도 수치에 따라 약물 치료와 수술을 통한 진료를 하고 있다.

피부과= 전문의 2명과 담당 간호사 2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피부과 진료내역으로는 연간 외래 4만여명의 환자를 진료했고 입원환자의 피부과적 요소를 진료하고 있다.
진료분야로는 지루성피부염, 알레기성, 족부백선, 옴, 손발톱무좀, 농가진, 아토피피부염등 각종 피부질환을 치료하고 있다.
레이져 수술기의 도입으로 흉터, 문신(눈썹문신), 점, 기미, 주근깨, 실핏줄확장증, 몽고반점, 오타시오반, 흑색반점, 청색반점, 검버섯 등을 치료한다.
특히 1909년 포싸이트 선교사의 한센병 환자 치료를 시작으로 9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한센병 환자 조기발견 및 치료에 노력하고 있으며 1966년부터 매월 3개시 2개군(순천시, 여수시, 광양시, 고흥군, 보성군) 한센병 환자(기존 나병환자의 공식명칭임)의 이동진료를 실시 인근 지역의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내과= 전문의 1명과 담당 간호사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과 진료내역으로는 99년 2,261명의 환자를 진료했고 입원환자의 내과적 요소를 진료하고 있다. 진료분야로는 복부초음파, 위내시경, 심장초음파, 심전도검사, 당뇨검사, 노인성질환등을 다루고 있다. 늘어가는 수술환자의 내과적 요소가 중요시 되어 입원환자 관리에 갈수록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마취통증과= 마취통증 의학과는 연간 4만명에 달하는 정형외과 외래환자 및 3,000여명의 수술환자들의 마취 관리 및 급만선 통증 질환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다. 최첨단 마취장비와 수술장비를 갖추고 있는 마취통증의학과는 80세 이상 고령 환자에 대한 수 많은 수술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적의 안전한 수술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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