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여수초오유원정대 등반기[2]
2003여수초오유원정대 등반기[2]
  • 김종철 기자
  • 승인 2004.03.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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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내리는 카트만두의 시내는 신의 땅에서의 결전을 암시했다.
2003.8.20 비
바빴던 하루
아침에 일어나 옥상으로 나가 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아직 가을은 오지 않은 듯 했다. 대원들끼리 할 일을 분담했다. 윤중수, 이권호 대원은 항공화물을 찾으러 가고 나머지는 필요한 장비와 식품을 사러 갔다.
비원 식당의 차를 타고 타멜 거리로 갔다. 타멜 거리는 장비점이 있는 거리이며 매우 비좁고 복잡하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카트만두의 시내를 보고 있으면 마치 과거로 가지 않았나 하는 착각에 빠진다. 위태해 보이는 오래된 건물들과 각종 종교에 관계된 건물들 때문이다. 종교는 이들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일 수 있다는 다소 이질적인 논리도 혼란에 빠뜨리게 한다.
먼저 장비점에 들러 국내에서 구입하지 못했던 고소화를 구입하였다. 중고의 제품들도 많이 있었는데 한국제품들도 눈에 띄었다. 비가 오는 탓으로 거리는 금방 물바다가 되었고 하수도가 없어 빠지지도 않았다. 거기다가 오래 된 자동차들로 인한 매연 때문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채소를 파는 가게가 있는 곳으로 갔다. 윤기자 형수님이 현지인들과 이야기 하는 동안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다. 한국 같으면 5분이면 이야기가 끝나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아 시간 예측을 못한다. 처음에는 화도 나고 안절부절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적응이 된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계속 내리는 비 탓으로 채소가 없어 비원 식당의 단골 납품자에게 꼭 구해오라고 다그치고 왔다고 하셨다..
오후에 Miss Elizabeth Holly와 인터뷰를 했다. 나는 영어가 서투른 관계로 이정범 선배님과 이야기 하는 것을 옆에서 듣기만 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 몇 개로 짐작을 해보니 등반 개요와 대원 신상에 관한 내용이었다.
저녁에 등반행정 대행업체 Explore Himalaya의 사장과 나머지 계약을 체결하였다. 약간의 논쟁이 있었으나 잘 해결되었다.
2003.8.21 맑음
마지막 준비
다시 시내로 나가서 부족한 식품들을 구입하였다. 시간이 남아 가까운 곳을 걸어서 둘러보았다. 큰 세 발 자전거를 연상시키는 인력거가 운행되고 있었으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였다. 한 편에서는 도로 한 복판에 소가 누워 있었고 그 옆에서 비둘기 떼들이 모이를 먹고 있는 광경도 보였다. 서울의 거리에서 보는 사람들의 눈빛과 발걸음을 비교해 보면 엄청난 차이였다.
오후에 돌아와 짐을 포장하였다. 30kg단위로 포장해야만 야크(고산에서 짐을 옮기는데 사용하는 소)로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부피와 무게를 조절해야 했고 양이 많아서 지루하고 힘든 작업 끝에 오후 18시가 되서야 끝났다. 내일이면 모든 짐을 가지고 중국으로 넘어 간다고 생각하니 각오가 새로워졌다.

#그림1중앙#
2003.8.22 맑다가 비
코다리로
우리를 태운 버스는 카트만두를 벗어났다. 고도를 높여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국내에서 준비할 때에 8월 중순은 비가 많이 내려 도로가 유실되므로 8월 말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으나 티베트라는 고원지대에서의 고소적응 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중순에 출발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도로에는 문제가 없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모든 것이 명확하지 못한 이 나라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아직은 모르는 일이었다. 점심 때 쯤 휴게소 같은 건물이 있는 곳에서 휴식을 가졌다. 고용인들은 점심을 먹고 우리는 김밥으로 대신했다.
도로가 점점 좁아지고 주위의 지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협곡과 급경사의 산들이 나타났다. 고도도 조금씩 높아져 국경 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리산 보다 더 경사가 심한 산들에서는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이 물을 이용하여 벼농사를 짓고 있었다. 산 전체에서 물이 흘러내린다고 보는 것이 맞는데 산이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급경사임에도 계단식 논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었고 집도 농토 옆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생필품을 어떻게 나르는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한참 가다 보니 많은 자동차들이 서 있었고 우리 차도 멈추었다. 걱정하던 대로 도로의 유실된 부분이 발생한 것 같았다. 차안에 있기가 무료하고 어찌된 영문인지 알고 싶어 내려서 올라가 보았다. 300m 정도 가자 매우 좁은 커브길이 나왔는데 왼쪽은 절벽이고 오른쪽은 흘러 내려온 자갈로 덮여 있었다. 그 곳을 대형 트럭이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고 있었다. 더 올라가자 흙탕물로 범벅이 된 오르막길이 있었는데 이 곳이 문제였다. 가까스로 한 대씩 겨우 통과하고 있었다. 위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가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 도로는 중국과 네팔을 잇는 중요한 도로이기 때문에 양국 간의 물자를 운반하는 대형트럭들이 줄을 이어 다닌다. 다시 내려오는데 한 무리의 포터들이 달려내려 갔다. 아마 짐을 나르기 위해서인 듯 했다.
내려와서 보니 시간이 없는 트렉킹 팀들은 포터들을 이용하여 짐을 옮기기도 하고 있었다. 포터들은 인근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나쁜 도로 사정을 이용하여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10살 정도의 아이들과 여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신발이 없는 아이들도 있어 마음을 편하지 못하게 했다. 우리도 포터를 이용하여 짐을 옮기게 되면 100만원 정도의 비용이 추가로 지출되는데 그 다음 구간도 문제여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별로 할 일도 없어 밖에서 기다리면서 본 여행객들과 포터들의 표정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대조적이었다. 포터들은 도로가 복구되지 않기를 기대하는 표정이었고 여행객들은 빨리 복구되어 계획대로 여행을 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드디어 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나는 걸어서 빨리 올라가 보았다. 가는 도중에 비가 내렸다. 올라가 보니 도로 사정은 더 나빠져 올라가는 자동차가 자력으로 가지 못하고 불도저가 돈을 받고 끌어서 통과해 주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포터들은 원망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 차는 와이어를 걸 수 있는 훅이 달려 있지 않아 다시 후진하여 원위치 하였다. 따분하고 화도 났지만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트럭을 불러 짐을 옮겨 싣고 통과하였다. 가는 도중에 보니 많은 포터들이 짐을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행색도 초라하고 신발 사정도 좋지 않은데 힘들다는 느낌을 나타내지 않고 밝은 얼굴로 나르고 있었다. 그들의 수준에서는 큰 수입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태어나는 순간 살아가야 할 여건이나 방식의 많은 부분이 결정되어 버린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저들과 나의 하는 일이 이토록 다른 것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가?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히말라야등반을 위해 가고 있고, 저들은 네팔의 산간 지방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초라한 모습으로 기초적인 삶을 위해 짐을 나르고 있다. 내가 똑똑하고 잘 나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만약에 태어난 장소가 바뀌어졌다면 사람만 바뀌었을 뿐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을 텐데……. 그렇게 본다면 마음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저들이 당연히 나보다 낮은 무엇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이고 내가 정말로 아는 것도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왜 이런 쓸 데 없는 생각에 빠져있을 까? 이런 문제는 한가한 사람들에게 맡기고 나는 장무로 빨리 갈 궁리나 해야하지 않은가?’
불도저의 도움으로 50m 정도 가니 도로가 좋아져서 정상적으로 이동하였다. 지형이 점점 험악해졌으나 다행히 잘 가고 있었다. 오늘 장무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갑자기 차가 멈추어 섰다. 밖을 보니 왼쪽 계곡에서 엄청난 흙탕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어 차들이 가지 못하고 있었다. 내려서 가까이 가 보니 굉음과 함께 폭 15m 정도의 흙탕물이 무서운 기세로 도로를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었고, 아래쪽에는 떠내려온 바위들이 보였다. 조금 전에 약간 내렸던 비가 원인인 듯 했다. 저편에는 이쪽으로 와야 할 자동차들이 보였다.
“1-2 시간 있으면 물이 빠질 테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래, 그러면 되겠네.”
왼쪽 계곡으로 갈 수 있는 데까지 50m 정도 가보았으나, 우리의 추측보다는 엄청나게 클 것이라는 것 밖에 이 계곡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양쪽으로 가야 할 자동차와 사람들은 점점 많이 모이고 시간이 흘러도 우리의 초조함과는 달리 물의 양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2시간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국내에서 체득한 개념이고 여기에서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이 지나도 물의 양에는 변화가 없었다.
“우리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답답해집니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는 이들 방식대로 두고보면 해결이 되겠지요?”
“그래야지 별 수 있는가?”
두 사람이 도끼를 들고 높이 15m 크기의 나무를 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리를 놓으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나무를 폭이 좁은 곳으로 옮기고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날은 어두워진 가운데 사람들이 다리를 이용하여 건너가기 시작했다. 다리라고 해야 나무 두 그루를 걸쳐놓고 위 양쪽으로 4사람이 외이어를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중심을 잃고 떨어진다면 오른쪽 큰 계곡으로 흘러가 찾기가 불가능하게 보였다. 그러나 모두들 잘 건너가고 있었다.
우리도 트럭은 일단 놔두고 사람만 건너가서 차를 불러 코다리까지 가기로 했다. 캄캄한 가운데 헤드렌턴을 켜고 조심해서 차례로 건너갔다. 조금 기다리니 우리나라 군내 버스 같은 차가 와서 타고 코다리까지 갔다.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되었지만 내일 문제는 내일 해결하는 수밖에, 되지도 않을 일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데 중론이 모였다.

#그림2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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