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역사를 지켜왔는가
누가 역사를 지켜왔는가
  • 관리자
  • 승인 2004.03.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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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언제 들어도 친숙한 느낌을 준다.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한번쯤 지독하게 찬 겨울을 보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때 느끼는 따스함이란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올 봄은 그렇게 반가운 것만은 아닐 것이란 예감이 든다.
다름 아닌 '차 떼기'의 주인공들을 뽑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불쾌한 느낌까지 든다. 흔히들 다가올 4월 총선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진정한 지도자를 뽑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민의 봉사자임을 자임하며 출마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끼어있는 듯하다.
신분상승의 목적을 두고 총선에 뛰어든 사람들을 보면 마치 불나방이 모닥불을 보고 모여든다는 느낌까지 갖게 하고있다.
이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이유 중에는 우리사회 깊숙이 뿌리내린 관료사상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보이지 않은 계급주의 사상이 팽배해 신분상승에 따른 한탕주의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권력중심의 계급사회가 되어버린 현실속에서 민중들 스스로가 부정하는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俯君)=민중의 가치’를 말하고 싶다.
현고학생부군은 벼슬을 얻지 못한 대다수 민중들에게 사후에 부쳐지는 자랑스런 칭호이다.
우리의 역사속에서 민중과 현고학생부군은 같은 단어로 해석되는데 대해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 수많은 외침 속에서 온 몸으로 막아왔고,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고자 몸부림친 주인공들이다.
더욱이 반만년 동안 물려받은 가난의 굴레를 벗고자 허리띠를 조여 맨 근대화의 역군도 그들이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쟁취한 힘의 원천도, IMF의 파고를 헤쳐나간 주역도 바로 이 땅의 힘없는 민중들이었다.
현고학생부군신위, 그러나 우리에게 그리 달갑지 않는 칭호로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나와 내 자식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은 칭호이다.
학생(學生)이라는 칭호는 이 땅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간 민초, 즉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는 자조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우리선조들은 학생이라는 칭호 대신 숭록대부니 자헌대부니 하는 거창한 관직명칭이 붙기를 고대하며 쟁이 노동을 거부한 채 입신양명의 길로 치달았고 그것을 쟁취한 조상들은 두고두고 후손들의 자랑거리로 여겨졌다.
고작 쌀 10섬도 되지 않는 박봉에도 12대문에 99칸 저택과 수많은 노비를 거느리던 부정부패 정도는 아예 논의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
그저 학생이란 딱지를 떼어낸 고마운 조상에 대한 연모와 감사와 경외의 정만이 가득할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전통을 쫓고 있고 이어가고 있다.
또 위패에서 학생딱지를 떼 내기 위한 일이라면 우리는 못 할 것이 없다.
부모들은 자신이 못 이룬 한까지 아이들의 가방에 담아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기를 강요하고 있다.
더욱이 인문계와 실업계를 따지며 과거 '사농공상(士農工商)' 논리에 젖어있는 것 아닌가.
'뱀 대가리가 될지언정 용꼬리는 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단면이다.
이런 환경 탓에 정치인들은 양심의 가책 없이 부정을 저지르고 모함과 변절을 밥먹듯이 하며 자신의 주인을 짓밟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오늘날 찬란한 문화를 이룬 사람은 숭록대부나 자헌대부가 아니라 무시와 조소 속에 잊혀져 가고 있는 ‘현고학생부군(顯考學生府君)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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