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재래시장 활성화 정책 겉돈다
[르포]재래시장 활성화 정책 겉돈다
  • 이향주 기자
  • 승인 2004.0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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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원 벌기도 힘들어...여수 5일장 겨우 명맥 유지
재래시장 상품권·테마관광상품 연계 등 정책 개발해야
1910년경 부터 여수사람들의 삶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여수 5일장, 지금은 대형 마트와 소비자 패턴의 변화 그리고 최근 최악의 경기 위축으로 재래시장은 '식물시장'으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수시는 주차시설과 환경개선사업비 수십억을 쏟아붓고 있지만 영세상인들은 별다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소비자들 또한 이 곳을 찾기 꺼려하고 있다. 이에 기자는 4일 서시장을 직접 찾아 해법을 찾아 보았다.(기자 주)

하루 1만원 벌기도 어려워 탄식만

"배가 고파 죽것는디 돈을 못 벌어 점심밥도 못 먹었어라 "
4일 장날 여수 서시장에서 만난 오림동의 김 아주머니(55)는 아침 6시 버스를 타고 장어, 숭어, 털게, 새우 등을 싣고 이 곳에 나와 연등천교에 좌판을 벌였지만 장사가 너무 안돼 제 때 밥도 먹지 못하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큰 딸이 6학년일때부터 5일장이 열리는 서시장을 찾았다는 김 아주머니의 큰 딸은 벌써 35살이 됐다. 20여년이 넘게 장사를 했지만 지금처럼 장사가 안된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하루 1만원 벌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보면 난리난다"며 사진 촬영에 얼굴을 가린 김 아주머니는 "솔직히 이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생선과 채소는 엉뚱하게 차이가 많이 나지 않냐"며 재래시장 나름의 장점을 피력하기도 했다. 흥정만 잘하면 팔뚝만한 숭어 4마리를 4천원에 줄 수 있다는 김 아주머니의 말 속에 사람 냄새가 느껴졌다. 콩나물 100원어치 사면서도 10원을 깍기위해 옥신각신하던 어머님의 얼굴이 스쳐갔다.30대 이상의 여수사람 누구라도 어릴 적 장날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65년부터 초상화를 그렸다는 김 할아버지. 리어카에 영정 사진을 가득실고 순천에서 새벽 발품을 팔아 장날을 찾았지만 한 장도 그리지 못한 채 오후 3시경 서둘러 짐을 정리했다. 한때 하루 5장을 그리면서 돈을 쌀가마에 긁어 모은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양산업이 됐다며 자신의 무용담이 별 의미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림1왼쪽# 김 할아버지는 "정부가 노인정마다 1년에 5번씩 사진을 찍어주는데 누가 나같은 영감한테 오만원씩을 주고 초상화를 그리겠냐"며 "그래도 사진은 시간이 오래가면 색이 변색되지만 붓으로 그리는 초상화는 영원하다"며 푸념을 늘어놓었다.
보름을 앞둔 날이라 오곡을 파는 상인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지만 좌판을 깐 상인들은 맥없이 한숨만 지었다. 대형 할인점에서 편리하게 오곡세트를 팔아 장사가 전혀 되지 않는 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율촌에서 왔다는 김정해(57,가명)씨는 "농산물을 죄다 수입해 버리니까 농사를 어찌 짓겠냐"며 "국회의원들이 통 돈 돌라먹는 것만 알지 우리들 죽어나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고 정치인을 비난 했다. 옆자리 아주머니들도 "옛날엔 짐승이 더 무서웠지만 지금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 시대아니냐"며 섬뜩한 말을 거침없이 토해내며 거들었다.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사자후는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겨우 점심을 먹는다는 한 아주머니는 신문사에서 나왔다는 말을 듣자 숟가락을 놓으며 "지금 상인들이 장사할 자리가 없어서 다 돌아가 버렸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매달 자릿세로 5천원씩 내는 사람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달 끝자리가 4와 9가 들어가는 날에 열리는 여수 5일장, 예년같으면 지금의 충무동과 교동 일대가 발디딜 틈도 없었지만 지금은 썰렁하기만 하다.

겉도는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 문제는 '의지'

#그림2오른쪽#지난 해 여수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서교동 구 스카이볼링장에 103대가 들어 갈 수 있는 주차장을 마련하고 서시장 환경개선사업에 17억 3천여만원 투입했지만 재래시장은 여전히 홍역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여수시는 올해도 중앙시장 환경개선에 20억을 투입하고 남산동 지역에 수산물특화시장을 마련할 예정이지만 영세상인들은 별 다른 기대를 하고 있지 않고 있다.
서시장 상가번영회 김종명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주차시설과 아케이드 설치 등 환경 개선이 절실하지만 서시장 건물 정비에만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실제 장사를 하는 영세상인과 소비자들에게는 혜택이 없다"며 여수시가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특별한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말 청주시는 도내에서 처음으로 재래시장 상품권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청주지역 12개 재래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을 지역별 새마을금고 등을 통해 발매된 이 상품권은 백화점, 할인매장의 고객 선점에 대한 대응책으로 평가받으면서 재래시장 활성화에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 해 여수시가 발행하고 있는 일등상품권 9억 여원이 이마트에서 이용된 것을 감안하면 재래시장 전용 상품권 발행은 재래시장 활성화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충주시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무원들이 정기적으로 장보기 운동을 펼쳐 타 자치단체로부터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충주시는 지난 해 6월 매달 5일과 20일 5일장이 서는 날 희망 공무원들을 모아 셔틀버스를 이용해 재래시장으로 장보기에 나서 화제가 됐다. 시는 또 직원 월례 조회와 이,통장 회의, 새마을지도자,소비자 단체 간담회 등 각종 회의때도 재래시장을 이용토록 협조를 당부하고 현수막과 입간판 등을 설치해 일반 시민들의 동참을 유도해 경기침체와 대형 마트에 밀려 위축된 재래시장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여 예산만 쏟아붓는 여수시의 정책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시골장을 테마관광상품으로 개발해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리는 지자체도 있다. 꼬마열차를 타고 정선 5일장을 보러 가는 관광상품을 개발한 정선군을 찾은 관광객은 최근 5년간 모두 43만여명 이였다. 정선군은 이 기간 관광객으로 인한 직접적인 소득 효과가 238억 3천4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해 한칸 짜리 꼬마열차가 지역경기는 물론 재래시장 활성화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북 익산시 남중동 북부시장을 중심으로 한 '솜리장'은 백화점과 대형 마트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날로 번성하면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재래시장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부지 6천여평에 건평 3천여평의 상설시장이 있지만 5일장이 서는 날에는 상설시장보다 5배 크기의 장이 서기 때문이다. 익산시가 정책적으로 이를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국의 재래시장은 각 지자체의 의지에 따라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번성하기까지 하고 있다. 결코 재래시장 활성화가 '영원한 숙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수시의 겉도는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이 전면 재검토되지 않는다면 여수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재래시장은 공동체 삶을 지키는 뿌리이기 때문이다. 하루 1만원벌기도 힘들다는 서민들의 절규에 귀담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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