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보낸 편지(피아골산행기)
지리산에서 보낸 편지(피아골산행기)
  • 정송호 기자
  • 승인 2004.02.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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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나는 유독 지리산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얼마남지 않아서인지 도무지 일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꼭 가보아야지... 몇번씩 다짐을 해보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야하는 일상 때문에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늘(2000년 10월 29일) 하루 연가를 얻었습니다. 순전히 지리산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 바쁜 일손을 뒤로 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지리산으로 갑니다.
날짜가 바뀌기가 무섭게 지리산을 향했습니다.
딱 정해놓은 목적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지리산으로 향해 갑니다. 여명이 시작되면서 섬진강가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섬진강은 석양의 해질 녁에 가장 아름답다며 김용택시인이 "저믄 섬진강"을 노래했죠. 평론가 유홍준은 저믄 섬진강을 보라빛으로 채색을하면서 그 모습을 찬미했답니다. 오늘 동틀 녁에 바라본 섬진강은 처음에는 반짝이는 은빛을 띠다가 결국 태양을 머금고 붉은 빛으로 바뀌었답니다. 아~ 여명에 바라다 본 섬진강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어요.
피빛의 섬진강을 바라다 보면서 피아골을 가고 싶어졌습니다.
피아골의 초입에서 계단식 논들을 보면서 이 땅에서 살았던 민초들의 질긴 생명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연곡사에서도 날렵한 동부도의 세련된 모습보다는 북부도의 투박함이 더 정감있게 다가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고요.
직전(稷田)마을. 본시 이름이 피밭마을이었다나... 피아골의 이름은 거기에서 따왔다는데... 거칠디 거친 그 땅에 심을 건 피밖에 없었고, 피죽이라도 끓여 먹으려던 이 땅의 민초들은 피밭골에 모여 살았는가 봅니다. 그러한 처절함이 피아골에는 숨쉬고 있겠지요.
이른 아침 도착해서 본 직전마을에는 이제 피밭은 없더군요. 그 대신 관광객들이 남기고 떠나버린 도회의 찌든 냄새, 사람냄새, 술냄새, 그리고 돈냄새만 요란했습니다. 그래도 직전마을을 지나 삼홍소에 이르는 오솔길이 있었기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나만의 사색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 같은 호젓함이 좋았습니다. 민초들의 처절한 삶을 되뇌이여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수십년전 피아골을 누볐을 이 땅의 이름모를 젊음들을 생각했습니다.
삼홍소에는 말 그대로 "산이 붉게 물들어 흐르는 물이 빨갛게 변해 있었고, 거기에 비치는 인간도 붉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삼홍소의 물위로 낙엽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누군가 모든 생물은 죽어가는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했지요. 그런 모습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떠내려가는 단풍잎에서 애잔한 추억들의 묶음을 떠올립니다. 어릴 때 너무도 가슴 아프게 보았던 영화,"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마지막 장면을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애타게 기다렸던 연인의 편지를 읽다가 적군의 총을 맞고 쓰러지면서도 여울 물위로 떠내려가는 편지를 잡으려고 몸부림치면서 죽어가던 그 장면 말입니다. 어쩌면 수십년전 그 치열했던 시절, 누군가가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자리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물위에 떠날려 보내며 죽어 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합니다.
그렇기에 나는 지리산을 생각하면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 것은 말할수 없는 아련함, 한없는 그리움, 또 어쩔 수 없는 아픔입니다. 그러면서도 지리산은 어머니의 한없는 용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면서 상대를 죽이고자했던 이들이 이제 죽어서는 하나가 되어 서로를 용서하면서 지내고 있을 거라는 확신을 합니다.
혼자 걷는 지리산에서 나는 온갖 호사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나뭇잎이 산길의 돌 사이를 가득 메꾸면서 호피가죽이 되고 부드러운 융단의 카페트가 되고 있습니다. 오채색의 단풍 숲이 내가 가는 양 옆으로 병풍 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펼쳐저 있습니다. 산들산들 가을바람이 불어 옵니다. 메케한 나무향이 더없이 향기롭습니다. 그렇게 호젖한 가을 산행을 즐기고 있습니다.지금...
난데없는 개가 한마리 나타납니다. 아마도 위에 있는 산장에서 키우는 개인가 본데 나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는듯 그냥 지나가는 여유있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지리산에서는 개도 저렇게 등산을 하나 봅니다.
구계등계곡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됩니다.
계곡의 물도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름모를 산새소리가 지리산의 아침적막을 깨우고 있습니다.
아무도 보이는 이없는 외로운 산행길을 재촉하는데 대학생인 듯한 젊은이 하나가 소리없이 빠른 걸음으로 나타나 나를 앞서 갑니다. "젊음의 힘"을 느낍니다. 수십년 전 이곳을 무대로 산야를 달렸을 젊음들도 그랬겠지요. 그들을 그렇게 달리게 했을 엔진은 무엇이었을까요. 고차원적인 사상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순하게 젊음의 힘 때문이었을까요? 나는 그것은 그들이 믿었던 신념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념은 인간을 강하게 만드니까요. 신념은 인간을 초인을 만들기 때문이죠. 그 당시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고, 그들의 조국을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르고요.
그런저런 상념을 뒤로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낫날봉만 선명하게 보이는군요. 지금은 산도봉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피아골대피소를 지나 소위 피아골의 코재를 오릅니다.
오르막길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포근한가을햇살을 받으면서도 땀은비오듯 흐릅니다. 이런 고초 쯤이야 그 옛날 이 곳을 누비고 다녔을젊음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죠. 그렇지만 지금은 지금, 현실은 현실이잖아요. 요즘은 이 길을 오르는 이는 누구나 죽겠다고들 합니다. 길 양 옆으로 산죽 숲이 좌~악 이어지고 그 당당한 모습이 군복입은 병사들의 당당함을 느끼게 합니다. 신념을 이기는 당당함 말입니다.
이제 계곡은 멀어지고 물소리도 들리지않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소리"만이 귓전을 울립니다. 내 자신의 거친 숨소리만이 침묵의 동반자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만에 주능선을 다닿았고 임걸령을 지나칩니다.
임걸령에서는 당연히 그 옛날 초적 임걸년을 생각했죠. 그도 민초들을 위해 신념을 가지고 이곳에서 산채를 지어 초적질을 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런 아쉬움을 임걸령의 시원한 샘물에 삭혀 버립니다.
노루목을 지나고 반야봉에 오릅니다.
모처럼 다시 오르는 반야봉. 힘들다는 생각을 하면서 올랐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다 본 세상은 너무도 작아 보였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지리산이 새삼스럽게 큰 산이구나하고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리산 사이로 구름이 떠내려 갑니다. 토끼봉을 휘감고 도는 구름의 모습이 볼만합니다. 하지만 금새 흩어져 버리고, 세상사가 그렇듯 덧없다는 교훈만을 남긴 채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고나니 하늘은 울음을 머금은 듯 찌뿌둥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반야봉을 내려와 삼도봉에서 삼도민이 세웠다는 조그만 동탑하나를 멀끄럽이 바라다 봅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는 그렇게 지리산을 셋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그러함을 비웃는듯 주변은 온통 날파리 떼만 창궐해 있습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동탑을 안고 돌았던가 봅니다. 위쪽 끝부분이 반질반질해져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 때문이겠죠... 아마도.
이제 내려갈 일이 아득하네요.
뱀사골로 내려 갈 겁니다. 9km에 달하는 긴 거리인데, 옛 시절 이곳을 무덤으로 삼았던 우리의 젊음을 생각하면서 내려오니 금새 끝이 보입니다. 그나마 이 가을에 지리산에 대한 나의 간절함을 삭힐 수 있었다는 뿌듯함이 오래 남을 듯합니다. 오후 4시 반선에 도착하니 벌써 땅거미가 져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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